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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21. 2016

대한민국 교장제도 잔혹극 (3)

교장은 승진의 종착점이 아니다

1   

 

인류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는 <관료제 유토피아>(2016, 메디치)에서 관료주의 기구들이 “공범의 문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관료 조직에 대한 충성파는 이런 공범의 문화에서 만들어진다.    


조직에 대한 충성의 첫 번째 기준은 공범이 되는 것이다. 즉, 승진은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하는 허구적인 가설을 기꺼이 믿고 따르는 자발성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가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때때로 규칙과 규제들이 전적으로 어느 개인의 독단적인 권력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때조차 규칙과 규제들은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하는 허구적인 가설을 대부분의 관료들이 받아들인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2016), <관료제 유토피아>, 메디치, 49~50쪽.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장 승진 제도가 관료주의 시스템이 갖는 “공범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 준다고 말하고 싶다. 교감, 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하는 교사는 승진에 관한 능력주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능력 있는 교사가 승진한다! 승진에 필요한 그 ‘능력’이 무엇인지 그들만 안다!


승진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룰은 공평하다. 학생들과 함께 교육에 힘쓰는 교사가 승진에서 멀어지는 적나라한 현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만드는 승진 규정들은 교직 생활의 목표를 승진에 두는 승진파 교사들에게 합리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 이미 승진한 교감, 교장들을 통해 ‘꽃놀이패’처럼 휘둘리는 승진 구조 역시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승진 시스템에 충성을 다하는, 교육 관료 조직의 충성파가 된다.    


2    


현행 교장 승진 제도는 경력 평정, 근무성적 평정, 연수성적 평정, 가산점을 합산한 점수를 바탕으로 승진 후보자를 다점자 순으로 승진 후보자 명부에 등재한 뒤 등재 순서에 따라 이들을 임용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아래 승진 평점점의 변천 과정은 신현석 고려대학교 교수의 <힌국의 교원정책>(2010, 학지사)을, 교장 승진 심사 및 임용 절차 등과 관련된 내용은 김달효 동아대학교 교수가 <교장제도 혁명>(2013, 살림터)에 쓴 ‘교장임용제도 개혁을 위한 제안: 교장보직공모제’를 참고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교장 승진 심사를 위해 교육청에 교장임용심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교장 승진 대상자는 학교경영제안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학교교육관, 학교경영관리, 지역사회관계, 리더십 등을 심사 기준으로 하여 면접을 치른다. 교장임용심사위원회에서는 적격의 교장 임용 후보자를 교육감에게 건의한다. 교육감은 적격자로 선정된 자를 교육부 장관에 추천한다. 이후 교육부 장관 제청에 의해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용한다.


교장임용심사위원회, 학교경영제안서 등이 교장의 역량과 자질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점수만 잘 관리하면 역량이나 자질과 무관하게 승진 대열에 안착할 수 있는 구조적인 난점이 있기 때문이다. 성열관과 이형빈은 이른바 ‘자격증’ 중심의 교장승진제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엄밀히 말해 승진 개념은 교장(교감 포함) 자격 연수를 받을 수 있는 배타적 ‘티켓(입장권)’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승진에 요구되는 ‘포인트’를 적립해야 하는데, 이는 교장 자격을 준거로 부여한 포인트가 아니기 때문에, 승진 점수와 자격증은 원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의사 자격증은 있어도 병원장 자격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2013), <교장제도 혁명>, 24쪽.    


승진 명부에 오르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점수다. 경력 점수와 근무성적 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경력이 교장 ‘자격’을 완전히 보증해 주지 않는다. 근무성적은 평가권자인 교감과 교장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되어 타당성이나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나뉘어 있는 평정표를 신뢰하는 이는 별로 없다.    


(현행) 승진제도의 규정은 젊은 교사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들의 사기와 기대를 높이는 데 실패하고 있다. 또한 승진제도의 규정들은 교사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 교감으로 승진하게 되어 있어서 전체 교사의 능력 개발이나 헌신을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경력을 중시하고 극히 일부분의 교사들만이 승진할 수 있는 현행의 제도는, 전체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희소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기보다는 갈등의 유발 요인으로 보인다. - 신현석(2010), <한국의 교원정책>, 363쪽.


교원승진규정은 1964년 제정 이래 모두 30여 차례 개정되었다. 경력 평정 만점과 총 평정기간, 근무성적 평정, 연수성적 평정, 가산점의 등락에 따라 이루어졌다. 경력 평정 만점은 최초 제정 당시 만점이 100점이었다가 80점(1969.12.~1990.2), 90점(1990.2~2007.5)을 거쳐, 2007년 5월 25일 제29차 개정 시 70점으로 바뀌어 왔는데, 대체로 연공서열 중심의 체제를 기조로 하였다.


경력 평정의 총 기간은 15년(1964~1973), 20년(1973~1979), 25년(1979~1990), 30년(1990~1997), 25년(1997~2007) 등으로 변천해 왔다. 제정 이후 33년 동안 승진에 필요한 교육 경력이 15년에서 30년으로 꾸준히 늘다가 1997년 제20차 개정 시 축소되었다. 신현석에 따르면 이는 김영삼 정권이 능력 중심의 인사제도를 확립하고자 하는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한 조치였다.


근무성적 평정은 제정 후 제1차 개정이 적용된  1964년~1969년까지 60점을 만점으로 했다. 그러다 1969년 12월 제2차 개정 이래 80점을 만점으로 하는 시스템이 2007년 5월 제29차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40여년 가까이 적용되어 왔다. 근무성적 평정 만점은 제29차 개정 시 80점에서 100점으로 확대되어 최초로 경력 평정 만점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전체 평정 구조에서 경력 평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로 여전히 높아 연공서열적 특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력을 중시하는 교직 문화는 학교의 구조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의 학교 구조는 첫째, 객과적인 직무 분석과 직무평가를 통하여 이에 적합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교사를 임명하는 직위분류제적 요소와 거리가 멀다. 둘째, 명확한 성과 지표를 도출하고 성과 산출에 대한 책임과 기대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성과관리 체제와도 거리가 멀다. 셋째, 폐쇄적인 충원구조로 근속연수 중시의 승진제도와 보수제도를 특징으로 한다. - 위의 책, 378, 379쪽.


3    


오늘날 우리나라 초중고교의 학교장은 학교 내에서 절대자로 군림한다. 제도적으로 그렇고 관습상 그렇다. 권위적인 교장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적인 교장이 될 것인가는 그의 바람과 의지에 달려 있다. 제도와 구조가 그를 민주적인 교장으로 세우는 데 한계가 있다.


성열관 경희대학교 교수와 이형빈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연구원은 <교장제도 혁명>에서 교장제도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교장제도 개혁의 중요성과 그 방향’ 참조)    


(1) 교장의 역할과 책임 규정에 대한 변화, (2) 누가 어떻게 교장이 되는가에 대한 변화 등이 그것이다. (1)은 교장의 ‘제왕적’ 권위가 아예 발휘될 수 없는 민주적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이고, (2)는 교장의 자격과 임용 방식을 바꾸는 문제이다. -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위의 책, 13쪽.    


민주적인 교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현행 승진 제도 아래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교장이 되는 교사들 자신의 민주적 리더십과 자질이 부족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성열관과 이형빈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현행 교장 자격증 중심의 교장승진제도가 갖는 폐쇄성 때문이다.


교장 자격증은 교장 (자격) 연수를 받았다는 일종의 ‘수료 증서’에 불과하다. 실제 자격(교장으로서의 역량, 자질, 소양 등등) 여하와 무관하게 승진 명부에 이름이 올라 연수를 받으면 교장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단순한 ‘수료 증서’가 ‘자격증’으로 변신하는 기이한 시스템이다.


성열관과 이형빈에 따르면 자격증 제도에 기반을 둔 현행 교장승진제는 교장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의 수를 배타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그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교장들이 자신들의 지위적 권익을 보호하는 이익단체를 조직적으로 운영해 왔다고 하면서, 그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다고 지적했다.


기득권 수호의 첨병처럼 자리매김 하고 있는 교장들의 이면에는 정치권력이 있다. 성열관과 이형빈은 교장들은 스스로 기득권을 수호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본다. 이때 정치권력은 교육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해 학교를 정권의 도구로 삼아왔는데, 이런 입장에서는 ‘순치된 조직의 장’으로서의 교장이 통제에 훨씬 유용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교장승진제의 개혁 기조도 이런 관점에서 잡아야 할 것이다. 성열관과 이형빈은 교장이 승진의 종착점이 아니고 보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교장승진제의 개혁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교장 권력의 기득권화와 교육의 정치적 도구화를 막고 학교 운영의 민주화와 동료애에 기반을 둔 학교혁신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교장승진제가 폐지되어야 한다. 그 대신 일정 기간 경력과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교사가 교장 지원 자격을 갖도록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격증 개념은 물론) 교장 자격에 대한 어떤 증서의 발급도 필요 없다. 오직 지원 자격을 규정하는 법규만 있으면 된다. - 위의 책, 25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관료제 유토피아>의 저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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