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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14. 2017

교원성과급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교원성과급제 폐지, 교육적폐 청산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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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년 동안 유지돼 온 일제고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필두로 한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의 끈질긴 폐지 요구와 노력의 결과였다. 교육적폐 청산의 첫걸음을 내디딘 낭보다. 이제 교직사회 전체를 분열시키는 대표 악제인 교원성과급제(성과급제) 차례다


모든 제도는 ‘목표’가 있다. 현행 성과급는 “교원들 간 협력과 경쟁을 유도하여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 목표다. ‘협력’과 ‘경쟁’이라는, 동시에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용어에 주목하자. 전형적인 ‘이중구속(double-binding)’ 시스템이다. 두 개의 상호 배타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두 가지 모두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가 이중구속 시스템이다. 교사들은 모순적인 심리 상태에 빠진다. 협력과 경쟁 어느 것도 살리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성과급제의 본질은 경쟁주의와 상대적 성과주의다. 여기에 협력을 집어넣어 상호 모순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경쟁주의와 성과주의의 반(비)교육적인 본질을 가리기 위해서다. 이상하다. 반(비)교육적인 본질은 지양할 요소이지 포장해 가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요소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이 질문 속에 지금까지 정부가 성과급제를 버리지 않는 이유가 숨어 있다고 본다.


성과급제 찬성론자들은 성과급제의 본질을 구성하는 경쟁주의와 성과주의가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무풍 지대 같은 교직 사회에 경쟁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때 ‘죽은’ 공교육 시스템이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럴까. 교사들의 경험적 사실과 성과급제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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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사실과 관련되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가 지난 5월 16~22일 도내 교사 1만791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7.7퍼센트가 ‘현재의 성과급 제도가 교원의 전문성 향상과 사기진작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이 지난 5월 10일 유·초·중·고 교사 1058명에게 ‘초중고 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장 우선시돼야 할 정책 3가지를 꼽아달라’고 했다. ‘교원성과급 폐지’가 72.7퍼센트로 1순위로 나왔다.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첫 번째 길이 성과급 폐지에 있다는 방증들이 아닐까.


이번에는 1979년 미국 텍사스 대학의 로버트 헬름라이히와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를 보자. 이들은 과학 분야의 박사학위 취득 남성 103명을 대상으로 성취도, 업무 지향성, 숙달 정도, 도전적 과제의 선호도와 경쟁심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조사 대상자들이 쓴 논문의 피인용 실적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인용된 이들이 업무와 숙달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경쟁심이 낮은 사람들로 드러났다.


헬름라이히는 애초 경쟁심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다고 한다.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헬름라이히는 심리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번 더 실시했다. 결과가 동일했다. 헬름라이히는 남성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연봉을 통한 성취도 측정 연구, 1300명의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평균학점을 이용한 성취도 측정 연구를 연이어 실시했다. 일관되게 경쟁심과 성취도 사이에 부정적인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기업인에 대한 연구 결과가 좀 더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성공적인 기업인은 매우 경쟁적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헬름라이히의 연구는 1985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초등학교 5, 6학년을 대상으로 경쟁심과 표준 성적을 비교했다. 비행기 조종사들의 경쟁심과 성과의 관계에 대해 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항공사 예약 담당자들의 경쟁심과 업무 능력에 관해 연구했다. 이들 연구 결과는 한결같이 경쟁심과 성적, 성과, 업무 능력이 모두 부정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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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8일, <뉴욕타임스>가 뉴욕 시가 성과급 제도를 폐지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 전에 뉴욕 시는 3년 동안 교원들에게 성과 상여금으로 5600만 달러를 지출했다. 교육부 장관이 그 비용과 효과를 따져 보았다. 연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자 제도 폐지를 단행했다. 당시 연구 보고서에 “상여금은 교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나 학생들의 시험 점수에 대해 뚜렷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가 성과급제를 최초로 도입한 것은 2001년이었다. 개인성과급제는 해마다 차등 지급 폭이 커졌다. 말 많고 탈 많던 학교성과급제를 4년간 운영하다가 작년(2016년)에 폐지하였다. 올해부터는 성과급제를 승진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경쟁주의 기조를 강화하였다. 협력과 경쟁을 통해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하고 사기를 진작한다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국제교원노조연맹 보고서(《교사의 전문성, 어떻게 만들어지나》, 2015, 살림터)를 보면 <학습 들여다보기(Visual Learning)>(2009)라는 제목의 교실‧교과 효과성에 대한 메타 분석 연구 사례가 인용되어 있다. 교육학자 존 해티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관련된 800가지 메타 분석을 종합한 결과에 기반해 작성한 것으로, 교육의 ‘효과’나 ‘결과’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고 폭넓게 인정받는 보고서다.


이에 따르면 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상위 요인 1위, 2위는 ‘학급 환경’과 ‘목표에 도전’이다. ‘교사 유형’은 7번째 순위다. ‘숙제’ 요인보다 한 단계, ‘학부모 참여’ 요인보다 두 단계 낮다. 이렇게 말해 보자. 학생들의 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 중 ‘교사 유형’이 ‘학부모’나 ‘숙제’보다 낮은 효과를 내므로 교사가 아닌 학부모의 학습 지도와 숙제하기 등을 강화하여 학생들의 성취도를 높이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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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제가 바라보는 교사관은 기능주의적이다. 교사들은 여하한 경우에도 성과를 내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단순 직공으로 간주된다. 공장 직공이 기계나 조립라인 앞에 늘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학교와 교실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협력과 공동체성을 통해 민주 시민을 양성해야 하는 우리 교육의 근본 목표로서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다.


성과급제는 사람을 경제적인 유인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전제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채찍’보다 ‘당근’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사람이 경제적 유인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해묵은 가정과도 관련된다. 이러한 전제가 옳게 작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더 갖춰져야 한다. 성과 평가 기준이 합당하고 공정한가. 평가 과정과 절차가 합리적이고 공평한가. 평가 결과가 조직과 개인에게 건설적인 영향력을 주는가. 곧 생산성에 도움을 주는가. 부정적이다.


성과급제 같은 전통적인 평가 기제가 이런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세계적인 인사 관리 전문가 팀 베이커에 따르면 이미 세계 유명 기업 30여곳이 전통적인 성과 중심 평가 시스템을 버렸다.(《평가제도를 버려라》, 2016, 책담) 한국지엠(GM), 제너럴일레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성과 전쟁의 최전선에 선 국내외 굴지의 대기업들이 평가 시스템을 뜯어고친 사례는 유명하다. 그들은 한결같이 경쟁주의와 성과주의에 바탕한 평가 기제가 사내 인간관계를 해치고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글로벌 대기업들의 평가제도 혁신은 ‘트렌드’처럼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성과 평정이 비교적 무난하다고 간주되는 ‘기업체’에서 그랬다. 정부가 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성과급제 폐지가 교육 정상화와 적폐 청산의 첫걸음이다. 교원성과급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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