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체벌에 관한 검찰의 ‘사회상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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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왜곡이나 망각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전제로 말해 본다. 군 복무 시절 딱 한 번 후임병을 때렸다. 후임들 ‘군기’를 담당하는 ‘상병 식기조’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후임들을 손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바로 위 선임의 은근한 주문이 있었던 것도 같다. 부식창고 으슥한 구석에서 곡괭이 자루를 들었다.
자대 전입 후 참 많이도 맞고 얼차려를 받았다. 다양한 상황에서였다. 밥 천천히 먹는다고, 동작이 굼뜨다고 맞았다. 무릎에 피가 터지게 축구를 해도 패하면 패했다고, 이기면 제대로 이기지 못했다고 맞거나 얼차려를 받았다. 그때마다 분하고 서러웠다.
체벌에 동원되는 물건들의 목록도 다채로웠다. 곡괭이 자루, 야전삽, 소총 개머리 등 ‘고전적’ 도구에서부터 국자, 장작, 권투 글러브 등 ‘컬트적’ 수단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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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에 갓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으로 매복 작전에 들어갔다. 한밤중부터 새벽까지 비무장지대 매복 진지에 들어가 사방을 경계하는, 북한 인민군이 몰래 다가와 아군 귀를 베간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따라붙어 다니는 작전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살짝 코를 골며 졸음에 빠져들었나 보다. 순간 화들짝 놀라며 졸음에서 벗어났으나 그때부터 공포감이 밀려왔다.
휴전선 통문을 나와 소대로 복귀한 뒤 발바닥에 땀이 나게 얼차려를 받고 얻어 터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범한 실수에 따른 마땅한 처벌이었을까. 굵은 장작개비로 가슴팍을 내리치는 체벌은 그 전이나 후로 결코 상상하기 힘든 혹형이었다.
작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정당한 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 아닌가. 그러면서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치가 떨렸다. 극도로 공포스러운 시간이었다. 고통의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던 그날 이른 아침의 ‘추억’을 나는 지금도 결코 잊지 못한다.
3
수년 전이었다. 군 시절 친하게 지내던 후임과 오래간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예의 부식창고에서 벌어진 체벌담이 나왔다. 전역한 지 25년이나 지났는데도 후임의 머릿속에 체벌 기억이 뚜렷이 남아 있다는 게 놀라웠다.
당시 나는 감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했다. 식기조로서의 불가피한 위치와 구실을 설명한 뒤 후임들에게 체벌을 일종의 관행적인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중립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가한 체벌은 후임에게 평생의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4
고등학교 1학년 학생 3명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다 학년부장 교사에게 걸렸다. 교사는 욕설을 하고 각목으로 주변 사물함을 내리쳤다. 부러진 각목을 한 학생의 목에 겨누고 “찔러 죽이기 딱 좋다”고 위협했다. 학생들은 기숙사 방에 한데 모여 경찰에 “무섭다”고 신고했다.
이튿날이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교무실로 불렀다. 문을 걸어 잠근 뒤 “야간에 정해진 기숙사 호실을 이탈했다”라며 학생들 엉덩이와 허벅지를 대걸레의 알루미늄 봉으로 때렸다. 봉이 구부러지고, 허벅지에 멍이 들었다. 동료 교사 2명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경기 김포외고에서 일어난 이 ‘가공할’ 체벌 사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이유가 놀라웠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생활지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체벌행위는 아니다”였다.
검찰이 내린 결론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였다. ‘상규(常規)’는 “보통의 경우에 널리 적용되는 규칙이나 규정. 또는 사물의 표준.”이다. ‘상식’과 일정한 친연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공화국 검찰의 ‘상식’ 수준이 참 거시기하다. 개와 고양이에게도 그렇게 때리지 않는다/못한다. 동물학대니 뭐니 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검찰이 사는 세상이 우리와 다른 것일까. 평범한 '사람' 국민을 ‘개돼지’ 정도로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그들의 평소 시선을 떠올리면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닐 것 같다.
5
체벌은 체벌일 뿐이다. 폭력을 당한 감각이나 기억은, 그것을 아무리 미화하고 중립적으로 객관화하려고 해도 상흔처럼 남기 마련이다. 25년의 세월을 보낸 ‘성인 군인’조차 기억에서 쉬이 지우지 못하는 트라우마 같은 것이 체벌 폭행이다.
머리 좋은 검사들 집단인 검찰이 종작 없는 ‘사회상규’를 들먹일 리가 없다. 이유와 배경이 있다. 김포외고 건을 보도한 기사들에 달려 있는 포털 댓글들을 우연히 보았다. ‘애들이 안 맞아 싸가지 없다’, ‘말 안 듣는 애들은 맞아도 싸다’, ‘때려야 정신 차린다’, ‘체벌이 불가피하다’ 식으로 쓴 댓글들이 많았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조선시대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당시 서당 풍경이다.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13639)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