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와 자사고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1)
1
경기교육청 발 외고와 자사고 폐지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다. 어김없이 ‘하향 평준화’와 ‘수월성 교육’ 논란이 뒤따르고 있는 것 같다. ‘진보지’라는 <한겨레>마저 ‘사설’로 이 문제를 짚고 있다.(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798815.html)
하향 평준화와 수월성 교육 문제는 ‘교육력’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외고와 자사고의 우수한 학교교육 시스템이 높은 교육 효과를 내고, 그 결과 학생들이 높은 학업 성취 수준을 유지한다는 식이다. 그런가.
범박하게 정리해 보자. 외고의 높은 교육력, 곧 유능한 교사진과 수준 높은 교육과정과 학생들의 우수한 학업 성취도는 ‘신화’ 같은 허구의 프레임이다. 선택의 구조적 난점과 ‘선발 효과’라는 개념으로 논증해 보자.
2
외고와 자사고를 선택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합리성’을 강조한다. 이들이 말하는 학교 선택의 합리성 기제는 다음과 같은 배경 구조 속에서 작동을 시작한다.
‘나쁜’ 학교와 ‘좋은’ 학교가 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쁜 학교를 탈출해 좋은 학교로 향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와 교육을 선택하게 되면 학교 간 경쟁을 강화해 학교과 교육이 다양성과 개별성으로 유도된다. 선택의 문호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이렇게 물어보자. 무엇을 기준으로 한 좋은 학교인가. 우리는 좋은 학교를 어떻게 식별하는가. 간단하다. 일부 학교가 나쁘다고 알려져야 한다. 나쁜 학교가 있어야 좋은 학교가 존재할 수 있다.
‘전제된’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합리적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자녀를 위해 좋은 학교를 고른다. 모든 학부모와 학생이 좋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을까. 힘들다.
그들 모두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동등한 사회적 위치에 있지 않다. 좋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학부모 계층은 제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좋은 학교로 알려져 있는 학교들, 외고와 자사고 등 특목고와 국제중・고는 거의 예외 없이 고비용 구조로 운영되는 교육 시스템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학부모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3
이런 상황에서는 ‘선발 효과(screening effect)’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선발 효과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높은 사회경제적 배경 아래서 탁월한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는 학생들이 좋은 학교를 선택해 입학한다. 학교 전체의 학업 성취 능력이 높게 평가된다. 좋은 학교가, 학교 자체의 교육력이나 교육의 질 향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수한 학부모 집단 자녀들을 중심으로 한 우수한 동일 학생 집단을 선발한 결과라는 것이다.
학교는 선발 효과의 위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선택의 주체가 학생이나 학부모가 아니라 학교가 되는 왜곡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대학과 고교의 위계 서열 시스템에서 상위권에 놓이는 학교들이 성적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동원하는 온갖 화려한 방법과 기교를 떠올려 보라.
그들은 ‘우수한’ 성적과 ‘훌륭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학생(학부모)을 선택해 포섭하기 위해 기꺼이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한다. 그것은 차라리 ‘구매’에 가깝다.
선발 효과가 위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계층 간 교육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 일부 계층의 학부모들이 학교 선택권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면 내릴수록 선택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 다른 계층의 학부모들은 교육 선택의 기회를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