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교육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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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3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관한 조다. 이 조의 제1항과 제5항은 각각 다음과 같다.
① 교육감은 다음 각 호의 요건에 모두 해당하는 사립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법 제61조에 따라 학교 또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고등학교(이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라 한다)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 이 경우 미리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⑤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두 항 말미에 공통적으로 “미리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가 등장한다. 2014년 12월 3일 태어난 문장이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이 함께한 국무회의장에 크게 울린 세 번의 의사봉 소리와 함께였다.
그 전 이들 위치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협의’가 ‘동의’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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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하반기 대한민국 교육계가 매우 소란스러웠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발 서울 지역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지정 취소 논란 때문이었다. 지정 취소 논란의 대상이 된 학교는 숭문고, 신일고, 경희고, 배재고, 우신고, 중앙고, 이대부고, 세화고 등 8개 교였다.
논란이 커지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수세에 몰렸다. 조 서울교육감은 예의 법령에 따라 교육부와 조속히 ‘협의’하여 문제를 일단락 지으려고 했다. 수차례 협의 요청을 했다.
교육부는 서울교육청의 잇단 요구를 거부했다. 이와 동시에 조 서울교육감이 최종적으로 6개교(경희고, 배재고, 우신고, 중앙고, 이대부고, 세화고)에 대해 내린 ‘지정 취소’ 결정을 ‘취소’해 버렸다.
교육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들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3에 있는 ‘협의’가 ‘동의’로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울교육청이 ‘몽니’를 부린다고 보았다. 이에 강제적 의미를 내포한 ‘동의’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해당 조항에 담아내기 위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자사고의 지정 취소에 대한 교육부 장관 사전 협의의 ‘구속력’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조 서울교육감이 교육부의 ‘빼박’ 조치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이청연 인천시교육감 등 수도권 ‘진보교육감’들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직권취소무효소송 제기, 성명서 발표 등의 저항 전술이 동원되었다.
모두 허사였다. 서울교육청이 제기한 직권취소무효소송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 대법원에 3년째 계류 중이다. 자구 해석의 권한까지 독점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육부에게 ‘일부’ 교육감 이름으로 낸 성명서는 한낱 종잇장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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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은 법률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령이다. 법률이 위임한 사항과 집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대개 대통령령으로 제정된다. 이밖에 총리나 장관이 내는 총리령이나 부령이 있다.
시행령은 법 체계상 법률의 하위에 놓인다. <초․중등교육법>이 위에 있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그 아래 있다. 교육부와 서울교육청 사이에 벌어진 싸움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 국정’의 보기였다. 법률적으로는 하위법인 시행령이 상위법인 법률 위에 군림하는 ‘시행령 통치’의 전형적인 일단을 보여주었다.
<교육기본법> 제11조는 학교 등의 설립 주체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법인이나 사인(私人)’ 등으로 규정해 놓았다. <초․중등교육법> 제3조와 제4조에서는 설립 주체별로 국립(국가), 공립(지방자치단체), 사립(법인이나 사인)을 구분한다. 동법 제5조에서는 ‘지도․감독’의 주체를 국립학교는 ‘교육부장관’, 공립과 사립학교는 ‘교육감’으로 명확히 구분해 놓았다.
2014년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예의 자사고들은 모두 교육감의 관할 아래 있는 공립․사립 학교였다. 지정 취소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한 ‘해석’이다. 당시 교육부가 의뢰한 정부법률공단에서도 자사고 등의 지정과 지정 취소 권한이 교육감(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임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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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하였다. 그 결과 전국 모든 학교의 설립 운영과 지정과 지정 취소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을 교육부가 갖게 되었다.
교육부가 ‘시행령 무단 통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배경을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다. 나는, 실질적인 ‘교육자치’를 어렵게 하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의 ‘특징’에서 한 단서를 찾고 싶다.
주요 교육 관계 법규인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은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을 사무와 권한의 공동 주체로 설정해 놓고 있다. 많은 조항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 한다” 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 법률 조항을, 국가와 지자체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조정 수단이나 법적 근거로 삼기에 미흡한 까닭이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가가 포괄적 권한을 독점함으로써 지자체 고유의 사무와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해법은 간단하다. 교육자치 확대라는 기조 위에 국가와 지자체의 사무를 분명히 가르고, 고등교육을 제외한 유․초․중등교육 관련 사무와 권한을 교육감이 관장하도록 하면 된다. 그 중 국가의 지도․감독이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따로 정해 놓는 방법이 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다. <한국일보>(http://www.hankookilbo.com/v/9a6e347a0e694f00a0af0acd860b16ec)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