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교육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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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본법>은 교육의 ‘기본’을 담은 법이다. 수십 종에 이르는 다양한 교육 관계 법규들의 ‘기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교육기본법>은 1997년 12월 13일 제정, 공포되었다. 그 전에는 48년간 이어진 <교육법>이 있었다. 1997년 당시 <초‧중등교육법>과 <고등교육법>이 이 법과 함께 제정되었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해 놓고 있다. 전체 구성은 비교적 간명하다. ‘총칙’, ‘교육당사자’, ‘교육의 진흥’ 등의 3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칙의 주요 내용은 교육이념, 교육의 기회균등,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 교육재정, 의무교육 들이다. 교육당사자 장에서는 학습자와 보호자와 교원 등 교육주체들의 기본권과 의무 들을 규정하였다.
교육의 진흥 장에는 교육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담았다. 남녀평등교육 증진과 학습윤리 확립, 평화적 통일 지향, 특수‧영재‧유아‧직업교육 들을 포함해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한 학교 및 교육행정기관 업무의 전자화, 학생정보의 보호원칙 들이 두루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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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본법>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근본 철학과 기조를 알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개정 ‘투쟁’이 벌어지거나, 그 과정에서 관련 사안이 정치사회적 논란거리가 되어 부각되기도 한다.
10년 전인 2007년 1월 19일, 청소년의 의사대변 및 권익신장을 위해 출범한 ‘대한민국청소년의회’(아래 ‘청소년의회’)가 ‘학습자의 학습 자율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을 위해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청소년의회에 참여한 학생 활동가들은 <교육기본법> 제12조(‘학습자’) 제2항에 학습자의 학습 자율권을 보장하는 내용(아래 괄호 친 부분)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2조 ② 교육내용 ‧ 교육방법 ‧ 교재 및 교육시설은 학습자의 인격(및 학습의 자율권)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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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본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는 대목 중 하나가 의무교육에 관한 것이다.
2012년 8월,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고등학교 의무교육에 대한 <교육기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제출하였다. 우리나라 중학생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거의 100퍼센트에 육박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사실상 의무교육화 해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현재 9년(초등교육 6년, 중등교육 3년)의 의무교육 기간을 12년으로 늘리기 위해서였다.
<교육기본법>상의 의무교육 관련 조항 개정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돈 문제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 초중고교육의 정부재원 의존율은 77.8퍼센트다.(2011년 9월, 참여연대 ‘47개 입법과제와 8개 국감과제’ 자료) 우리나라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오이시디 10개국 평균 87.6퍼센트보다 10퍼센트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현재 고등학교의 전면적인 의무교육화에 따른 소요 예산은 1조 5천억 원 대 정도라고 한다.
의무교육 12년제 시스템 반대론자들은 의무교육 확대에 따른 정부 재정 부담을 근거로 든다. 확대되는 기간만큼 늘어나는 의무교육 예산이 정부의 예산 운용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것. 1조 5천억 원은 우리나라 한 해 예산 300조 원의 0.5퍼센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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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교육 외에도 <교육기본법>에는 빠져 있거나 부족한 ‘기본’이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공화국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 ‘교육이념’에서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과 의의를 밝혀 놓았다. 교육의 기본 중 기본이 민주주의라고 하겠다.
그러나 국민이 학교와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철학과 역사를 꼼꼼하게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실 속에서 움직이는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교육법적 근거가 없다.
민주시민교육은, 안전‧건강교육, 인성교육, 진로교육, 인권교육, 다문화교육, 통일교육, 독도교육, 경제‧금융교육, 환경‧지속가능발전교육 등 10개의 범교과 학습주제 중 하나로 끼어들어 있다. 민주주의가 언어로만 존재하고, 민주시민교육이 선언적 구호로만 외쳐지는 현실의 민낯이다.
노동과 인권에 관한 교육의 ‘기본’이 안 보인다. 노동과 인권에 관한 교육은, 10개 범교과 학습주제 중 하나인 민주시민교육의 하위 내용으로 들어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에 이르기까지 노동자가 교육과정 내용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 생활이나 경제 성장을 배우는 대목에서 주변적인 소재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미국과 일본 등 오이시디 주요 국가들은 다르다. 초‧중‧고교교육과정에서부터 노동인권과 관련된 교육을 실시한다. 교과(목) 내용에 노동 계약서, 임금과 안전, 노동조건, 불법노동, 모의 노사관계 들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교육시킨다. 노동과 인권에 관한 교육을, 이른 시기부터 짜임새 있게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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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본법>의 ‘기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무엇을 ‘기본’에 포함시킬 것인가. 우리 사회가 지지하고 지향하는 교육철학과 교육제도의 틀이 이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교육기본법>의 ‘기본’에 대한 고민이 더 깊이 이루어져야 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신문 <교육희망>(http://news.eduhope.net/sub_read.html?uid=14241)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