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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11. 2017

‘평범한’ 교사와 ‘비범한’ 교사

교직 정체성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하여 (1)

1

     

막스 베버는 ‘학자’라는 직업, 예컨대 대학 교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외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평범한 인재들이 해마다 당신보다 앞서 승진하는 것을 보고도 내적 비탄이나 파멸 없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매번 두말할 나위도 없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됩니다. “물론입니다. 나는 단지 나의 ‘천직’을 위해서 살 뿐입니다.”    

 

베버는 이에 대해 매우 건조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 가운데 내적 상처를 입지 않고 참아 내는 사람은 아주 적은 몇몇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     


나는 ‘학자’나 ‘교수’ 대신 ‘교사’를 집어넣고 베버의 말을 음미해 보았다. 베버는 아마도 “평범한” 인재들과 비범한 인재들을 분류하고 있는 것 같다. 거칠게 능력주의적 시각이라고 해 두자.


교사가 탁월한 교육적 성취를 이루면 비범한 인재(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취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 


성취와 무관하게 특정한 자질이나 태도가 ‘평범’과 ‘비범’을 가르는 잣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베버가 학자 됨에 필요하다고 본 특유의 직업적 소명의식, 열정, 영감에 대당하는 어떤 것을 갖추고 있는 교사가 비범한 교사라는 말일까.     


3     


교직 정체성과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나는 초등교원 티오(TO) 문제와 학교 비정규직 교사의 정규직화 논란의 바탕에 교사의 전문가성 여부나, 교직이 전문직이냐 아니냐는 정체성 측면에 대한 근원적인 철학, 가치, 관점의 문제가 깔려 있다고 여긴다.


이런 흐름도 있다. 교육혁신과 학교혁신의 중핵에 수업혁신이 자리잡고 있다. 수업혁신의 책임주체는 교사다. 교사가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기타 등등.


그런데 나는 교사 전문성 담론이 이런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용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의 논지를 빌려 말해 보면(청주교사교육포럼 2017; CITEF 2017, ‘교사 전문성 신장 워크숍’ 발제 자료 <교육과정 혁신과 교사 전문성 담론>), 교사 전문성 담론이 “권력이 지식을 동원하여 교사 주체를 특정한 전문성 담론의 틀로 포섭하는 기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 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자. 법령이 규정하는 교사의 ‘임무’는 “학생을 교육”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의 핵심은 ‘수업’과 ‘학생 지도’에 있다. 그렇다면 수업을 잘하고 학생을 잘 지도하는 교사가 ‘전문가’ 교사인가. 어떤 수업, 어떤 지도인가. 수업을 잘하고 지도를 잘하는 교사가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가.     


4     


답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학교 외적인 정책과 제도(넓은 의미의 정치), 학교 내부의 문화와 습속 들이 두루 얽혀 있다. 


그러나 좁고 희미하지만,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전제와 관련된다. 교직 정체성이나 교사의 전문성을 ‘학교’와 ‘교육’의 문제에만 국한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 그것이, 자주인과 문화인과 교양인과 민주시민 양성이 목표인 공교육 시스템에 걸맞다고 여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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