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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18. 2017

전교조와 ‘여권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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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0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 명의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아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공공부문의 새로운 인사관리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는 명목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본 방침을 제시하였다. 


▲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제한적으로 예외 인정) ▲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기관 단위에서 노사, 전문가 참여 통해 자율 추진 ▲ 7~8월 특별실태조사를 거쳐 9월 중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로드맵 마련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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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라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 채용 방식이나 임금 체계에 관한 포괄적인 원칙도 제시했다. 고용승계와 공정 채용 원칙 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관별로 이해관계자의 협의 등을 통해 결정한다고 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관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정부 원칙은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각 공공기관별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대화와 합의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최근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체를 무조건적으로 정규직화할 것처럼 발언하고 있다. 위험한 태도다. 이해관계자들 사이를 감정적으로 이간질하면서 근거 없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비합리적인 행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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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기간제 종사자들을 심의 대상으로 하여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을 결정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아래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교육부장관이 지정하는 위원장(외부인사)과 교육부 소속 당연직 위원 1명(이기봉 교육부 기획조정실장), 국립대학 1명, 노동계 추천인사 2명, 고용노동전문가 2명, 교원단체 추천인사 1명, 학부모단체 추천인사 1명, 교육감협의회 추천인사 2명 등 11명으로 구성된다.


정부는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심의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처럼 보인다. 회의체의 위상을 자문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로 설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한다. 


정부는 교육 분야 비정규직(기간제 교사) 노동자 중 여러 기관에 동일한 전환기준 적용이 필요한 경우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거쳐 관계 기관에 제시할 공통 적용 기준을 심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심의위원회에서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하고, 그 결과를 정규직 전환 계획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심의위원회의 책임성을 극대화한 시스템이다.


심의위원회 구성을 통한 해결 방식은 일견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절차에 충실한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확대되는 것을 사실상 묵인하거나 조장해 온,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정부의 ‘과거’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따른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꼼수를 쓴 결과가 심의위원회 구성 아이디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가는 이유다.


일각의 분석에 따르면, 휴직 대체 등 불가피한 사유에 따른 학교 기간제 교원의 전체 수가 전국적으로 최대 1,5000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데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사자 19만여 명 중 기간제 교사는 3,2680명이다. 강사는 2,2738명이다. 이들 비정규직 교․강사들을 모두 합하면 비중이 전체 교원 대비 10퍼센트 수준이다. 


교육부 서열 3위이자 심의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가 있는 이기봉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에게 묻고 싶다. 학교가 이렇게 비정규직의 ‘천국’이 될 때까지 그간 교육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교원 법정 정원 관리기준을 학급 당 학생 수에서 교사당 학생 수로 변경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간제 교사 비중이 2000년 4퍼센트에서 2016년 10퍼센트로 2.5배 폭증하기까지 관리와 지도․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나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이들 문제와 관련하여 교육부 관료들을 상대로 확실하게 선을 긋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책임이 있다면 물을 것은 묻고, 필요하다면 그에 대해 응분의 조치까지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의지에 대한 교육부의 진정성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될 수 있다고 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노갈등’을 방치하고, 교원단체나 시민사회 간 갈등을 조장하는 듯이 보이는 현재와 같은 태도로는 어떤 전향적인 대화나 결론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향후 이어질 교육개혁의 성패도 이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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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에서 전교조가 심의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교조는 8월 16일자 보도자료(“전교조,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위원 추천하지 않기로”)를 통해 정부와 당사자(특히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기간제교사)의 ‘노정 교섭’과 ‘결자해지’를 강조하면서 불참을 선언했다. 


20여 일이라는 단기간에 단 4차례 열리는 심의위원회 회의만으로 복잡한 사안을 결정하기로 한 정부의 방침이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현재의 가이드라인을 관철하는 명분만 제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불참 이유로 내세웠다.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나는 전교조가 심의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전교조는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와 큰 틀에서 동궤에 있다. 문재인 정부와 전교조 모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교육개혁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범진보’라는 빅텐트 아래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전교조가 일정한 ‘여권 의식’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지금 전교조가 문재인 정부와 함께 교육개혁의 장정에 나서기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중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심의위원회 참여 여부가 중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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