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10대를 아느냐 (59)
몇 년 전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을 때였다. 우리 반 수업을 마치고 오신 선생님이 형수(가명)와 명철(가명)이 수업 시간에 빠졌다고 하셨다. 평소 장난꾸러기처럼 지내는 학생들이었으나 같은 시간에 한꺼번에 빠진 적이 없었다. 지레 걱정이 앞섰다.
나는 김 선생님에게 두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고 대답했다. 마침 곧장 우리 반 수업이 있었다. 교실에 가 보니 형수와 명철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형수와 명철이를 밖으로 불러냈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우연히 계단참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시종 음악 소리를 듣고 중간에 대화를 그쳤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야기에 정신이 쏠려 소리를 제대로 못 들었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음악 소리도 못 들었을까?”
넌지시 물었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였다고 대답했다. 현재 점수로 자신들이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어디인지, 가고 싶은 학교와 갈 수 있는 학교 사이에 있는 점수 격차를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들의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형수와 명철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우리 반에서 거의 ‘바닥권’이었다. 수업 시간에 진학이나 진로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도 두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딴짓 하기에 바빴다. 그들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조차 미심쩍었다.
형수와 명철에게 의외의(?) 대답을 듣고 난 뒤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른들은 성적이 안 좋거나 장난을 즐겨 하는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를 안 하고 말썽을 자주 부리니 인간성이나 인격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식으로 바라본다.
장래에 대한 고민 없이 하루하루 무력하게 살아간다고 지레 짐작한다. 멀쩡하고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학생들이 ‘문제아’나 ‘열등생’ 범주에 낄 수 있다. 형수와 명철을 바라보던 애초 내 시선이 그렇지 않았을까.
고정관념 위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 불안하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거나 사회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낙인을 찍는다. 어떤 하나의 ‘일’ 때문에 ‘문제아’가 된 후 지속적으로 문제아나 열등생의 삶을 산다.
그들은 영원히 구제불능인가. 우리 시대 어른들이 청소년이나 학생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을 한 번쯤 차분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