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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28. 2017

두리틀 박사의 후예들

동물의 의사소통 (4)

진심으로 두리틀 박사를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꿀벌의 언어나 말하는 앵무새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포유류인 개와 말, 코끼리, 고래 등에게 시선을 주고는 사람의 말을 가르치기도 했다. 역사에 등장하는 그 최초의 사례는 아마 영국인 존 러벅(John Lubbock)이 아닐까 한다. 그는 1884년에 ‘번’이라는 이름의 개에게 단어를 가르치려고 했다. 


 그로부터 120년 후쯤에는 독일의 카민스키(Kaminsky) 그룹이 나이가 열 살인 수컷 보더콜리종(Border Collie) ‘리코(Ricco)’를 대상으로 언어 습득 실험을 했다. 리코는 맹검법(盲檢法)을 이용한 훈련을 통해 250여 개의 단어를 알아들었다고 한다. 맹검법은 의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 과학적인 실험이나 관찰을 위해 널리 사용하는 기본 원칙이다. ‘맹검’이라는 명칭은, 피실험자가 실험자를 볼 수 없도록 피실험자를 ‘인(盲人)’의 조건에 놓이게 한 뒤 어떤 ‘사’를 실시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앞 장에서 살핀 ‘영리한 한스(clever Hans)’는 맹검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사례이다. 한스가 실제로 말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주인 오스텐의 몸짓이나 표정 변화를 읽고 답을 맞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리코에게는 맹검법이 철저하게 적용되었다. 리코는 서로 다른 물건이 놓인 방에 혼자 있어야 했다. 실험자는 다른 방에서 무작위로 선택한 단어(물건의 이름)를 말한 후 리코로 하여금 그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리코가 실험자의 표정이나 행동을 전혀 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두리틀 박사의 후예들이 동물의 언어를 알기 위해 찾아간 또 다른 곳은 바다였다. 그곳에는 지구에서 조류와 호미니드를 제외하고, 복잡하면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자발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고래류가 살고 있다. ‘고래의 언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들을 수 있거나 들을 수 없는 다양한 소리 유형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자연계에서 동물들이 내는 소리는 아주 다양한 주파수 영역에 걸쳐 있다. 이들 소리 중에는 사람의 귀로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평균 15세 정도의 인간이 정상적인 대화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 범위는 30~18,000헤르츠 사이에 있다. 자연계에는 이와 같은 가청(可聽) 범위를 넘어서는 소리들이 아주 많다. 긴수염고래나 흰긴수염고래가 내는 초저주파 불가청음(infrasound)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소리는 30헤르츠 아래의 낮은 주파수로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돌고래가 사용하는 소리는 1만 8,000헤르츠 이상의 고주파수로 이루어진 초음파(ultrasound)이다. 


 ‘고래 언어’에 대한 연구는 원래 비밀 군사 작전에 이용하기 위한 수중 음파 탐지 연구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고래들이 서로를 부르기 위해 주고받는 소리와 반향 정위 신호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향 정위(反響 正位)’는 동물이 발사한 초음파의 반향(울림)으로 사물의 존재와 위치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고래류뿐만 아니라 동굴 속에 사는 박쥐류도 반향 정위를 이용한다. 박쥐는 어두운 동굴에서 소리를 낸 후 들려오는 신호를 이용해 먹이를 찾거나 위치를 가늠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고래는 최대 25만 6,000헤르츠의 소리까지 낼 수 있다. 이는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고음의 최대 12배 이상의 수치에 해당한다고 한다. 고래류는 이렇게 폭넓은 음역(音域)에 있는 소리를 활용하여 갖가지 신호를 주고받는다. 범고래는 시계가 재깍거리는 듯한 소리를 이용하여 음파를 탐지한다. 8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까지 들리는 소리를 이용하여 무리의 방향을 파악하기도 한다. 대형 크루저선이 보통 속도로 달릴 때 내는 초강력음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흰긴수염고래도 있다.


 오늘날 두리틀 박사의 동조자들은 동물의 언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좀 더 냉정한 사람들의 평가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이들에게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이자 특권이다. 이들이 보기에 동물의 언어는 진정한 의미의 ‘언어’가 아니라 ‘신호’일 뿐이다. 이들은 동물들의 단순한 신호 체계를 ‘언어’라고 부르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예컨대 꿀벌의 8자 춤을 ‘언어’로 부르든 ‘신호’로 부르든, 그것은 모두 우리 인간이 멋대로 규정해 놓은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자연의 돌고래 언어가 사람의 신음 소리나 한숨 소리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과학자들의 말은 맞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가 인간의 언어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라는 주장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돌고래 공연장에서 조련사와 함께 힘들게 훈련을 하면서 가끔은 땅이(물이?) 꺼지라고 한숨 소리를 내쉬기도 하는 돌고래의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말)’이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희들은 왜 그렇게 우리 생각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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