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문집을 펴내며
0
지난 몇 주 사이 학급 문집 편집 작업을 했다. 정신이 없었다. 오늘 최종 원고를 업로드 한 뒤, 표지 편집과 판권 서지 마무리로 문집 관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올해 문집에는 학부모 교사 글책 읽기 모임에 함께한 학부모님 몇 분이 쓴 원고가 들어갔다. 각별한 문집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래는 문집 서문 격으로 쓴 글이다.
1
우리 2학년 4반 ‘홀수 날적이’와 ‘짝수 날적이’ 공책에 담긴 글 95편을 모아 학급 문집을 펴낸다. 지난 7개월여 간 우리 반 31명이 평균 3편 정도씩 글을 썼다. 담임 교사인 내가 쓴 글과, 학부모님들이 써서 보낸 글까지 합하면 100여 편이 넘는 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2
정치사회적인 성격을 지닌 글들을 제1장에 싣고 “중 2는 시민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10대 청소년 학생 미성숙론’이 부동의 진리처럼 유통되는 나라다. 작년 가을부터 타오른 촛불이 여기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었다. 얼마 전 과반 이상의 청소년 학생 계층이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놀란 눈으로 지켜본 어른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시대의 조류다. 제1장에서 ‘중 2 시민’들이 각자의 언어로 내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바란다.
제2장에는 학생들이 교실과 학교에서 경험하는 일상과, 그 시공의 다양한 결 가운데서 떠올린 소회와 깨달음들을 담은 글들을 모아 두었다. 제목을 “학교야, 교실아 안녕!”이라고 붙였다. 수업과 시험에 대한 갖가지 감정들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학생들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애틋함이 느껴진다. ‘착하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결국 그렇게 보게 만들고 마는 학생들의 따스하고 넉넉한 품이 잔잔히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제3장에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3장에 있는 글들을 읽다 보면 고백적인 일기 특유의 개인적인 색채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주변 사물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을 돌아보는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글들이 제법 있다. 먼 훗날 우리 각자가 어떤 변화와 성장의 흐름을 타고 지내왔는지 가늠해 보는 조그만 디딤돌들이 되리라 믿는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는 고풍스러운 어휘로 제목을 삼은 제4장에는 학부모님 몇 분이 쓴 글들을 모아 두었다. 지난 1년 간 ‘학부모 교사 글책읽기 모임’을 꾸려왔다. 몇 권의 책과 수 편의 글을 매개물로 삼아 학교 안팎의 일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 중에서도 플라톤의 <국가>를 함께 읽은 기억은 평생 갈 것 같다. 여기 실린 글들의 행간에서 모임의 색깔과 분위기를 그려보는 일이 쏠쏠한 재미가 되리라 본다.
제5장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에 묶인 글들은 내가 직접 쓴 일종의 교단 수필이다. 삐딱한(?) 내부자의 시선에 잡힌 학교와 교실의 색깔과 냄새, 이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미치는 은밀한 영향 들을 거칠게 써 보았다.
3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으로 학급 문집을 펴내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다. 담임을 맡지 않은 해와,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처 손을 쓰지 못한 한두 해를 제외하고 매해 문집을 펴냈다. 말하자면 이 문집은 한 해 우리 학급 살림의 결과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물론 그간 펴낸 학급 문집들이 화려한 것은 아니다. 되는 대로 얼기설기 엮었으니 꼴만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함께한 우리 모두의 ‘역사’가 서로 다른 백여 편의 글 속에 담겨 있다 믿는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역사책이라 자평해도 되겠다. 돌아가며 글 쓰느라 애쓴 모든 ‘중 2 시민’과 학부모님들께 고맙다는 말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