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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06. 2017

어느 형사범 교사의 추억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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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내 나이 41살에 형사범으로 기소되었다. 그 뒤 몇 년에 걸쳐 검찰과 법원을 오간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낯설다. 무슨 꿈결에서 겪은 영화 속 장면 같다. 


당시 이명박 정부 검찰이 기소의 핵심 근거로 삼은 법률은 <정치자금법>, <정당법> 따위였다. 옛 민주노동당 후원회원으로 후원금 19만 원을 냈다. 그것이 교사 공무원에게 금지된 정당 가입과 정치 자금 기부 조항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전국적으로 2000명이 넘는 교사 공무원들이 기소되었다. 단군 이래 최대 송사라는 말이 돌았다. 


지역 내 동료 선・후배 교사 18명과 함께 선 어느 항소 법정 풍경이 유별스럽게 남아 있다. 30대 초・중반쯤 되는 검사가 웃옷 안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항소 요지를 설명하기 위해 미리 원고를 준비해 온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국법 문란”을 경고하면서 준엄하게 꾸짖었다. 고교 시절 교육에 전념하면서 자신을 가르쳤다는 어느 ‘스승’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제법 진지한 어조로 원고를 또박또박 읽던 그에게 교사들의 정치활동은 법으로 엄금하고 처단해야 하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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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사는 국민 전체에 봉사하는 공직자(교육 공무원)인 동시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주체인 시민이다. 이와 같은 이중적인 정체성으로 인해 교사를 둘러싼 정치적 기본권 문제가 파생된다. 


전자에 따르면 교사는 법령에 따라 불편부당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후자는 교사가 근무 외 시간이나 근무지 바깥의 공간에서 일반 시민과 똑같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해도 되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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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 교사는 근무 시간 내외와 근무지 공간 안팎을 불문하고 정치적 기본권에 심대한 제한을 받고 있다. <헌법>이 교사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정치적 중립성 조항이 제한의 근거가 되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헌법> 제7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보장되다’라는 동사 서술어는 “어떤 일이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도록 조건이 마련되어 보증되거나 보호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금지나 제한, 의무가 아니라 권리를 명시하기 위해 마련한 조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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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립성은 종교적 중립성과 더불어 근대국가를 징표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그것은 국가의 정당정치적 중립성을 뜻한다. 오늘날 국가는 과거와 달리 경쟁하는 다수 정당 가운데 집권한 정당에 권력이 부여된다. 정권교체가 전제다. 


공직자는 그러한 정권교체 상황에서도 국가작용의 연속성, 안정성, 계속성을 담지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업무수행과 관련하여 정당정치적으로 불편부당한 업무수행이 요청되는 이유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헌법> 제7조 조항들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을 법률로 정하라는 헌법적 요청이다. 


<헌법>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개별 공무원이 법치행정의 담당자로서 법령이나 공익에 반하거나 정당정치적으로 편향된 업무 수행을 강요하는 상관의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복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로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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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권리처럼 내세우는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국가공무원법>이나 <교육기본법>에서 요령부득의 금지 조항처럼 변질된다. 교사 공무원은 근무 시간이나 근무 공간의 안팎을 불문하고 일체의 정치 관련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금지 목록은 정치적 의사표현, 정당 가입, 선거 운동 등 거의 모든 정치활동을 포괄한다.

 

교사 공무원은 에스엔에스(SNS)상에서 정치 기사 공유나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조차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난민이나 천민에 비유해도 무방하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4퍼센트, 유권자의 3퍼센트를 차지하는 유력한 정치적 인적자원군이 철저한 정치적 기본권 박탈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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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정치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므로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교사의 종교 활동 역시 <헌법>과 <교육기본법>의 종교적 중립성에 따라 일체 금지되어야 한다. 교사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활동을 하거나, 후원이나 기부를 하는 일이 금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배나 법회나 미사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자발적으로 신앙 활동을 펼치며, 헌금이나 시주 등으로 후원이나 기부를 하는 행위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적인 영역에서 교사들이 종교 활동을 금지당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종교 활동과 관련한 상상과 정치 활동에 관련된 상상의 차이가 이토록 큰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에 대한 왜곡된 인식, 정치사회적으로 뿌리가 깊은 정치 혐오증 들이 배경에 깔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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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공무원의 정치 활동에 관한 세계 표준은 ‘허용’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 주요국 모두 공통적으로 정당 가입과 정당 후원 활동이 허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사 공무원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당 후원 활동을 펼치면 형사처벌과 징계를 받는다.


교사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을 금지하는 현행 법률은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미 2014년 3월 27일 헌법재판소 재판권 9명 중 4명이 교사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전면 금지하는 현행 <정당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와중에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내보인 부당한 행위가 나라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중립성은 부작위나 무개입이 아니다. ‘中立(중립)’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고 정의로운 편에 서는 것이다. 전면적으로 보장된 정치적 기본권을 바탕으로 교사 공무원들이 건강한 정치 활동을 펼칠 때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인 픽사베이(pixabay.com)에서 가져왔다.

* 참고 자료:

(가) 이종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기본권 입법화를 위한 법적 검토>, 교원의 정치기본권 입법화 법적 정당성 검토 자료.

(나) 신인수(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교원의 정치기본권 현황과 입법 과제>, 박주민의원 등 입법발의안 검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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