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교육부장관과 교육부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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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봉한 영화 <판도라>를 보면 권력자를 둘러싼 ‘인의 장막’이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극중 한별 핵발전소 소장은 청와대 비서관 네트워크를 통해 한별 핵발전소 안전성 검사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대통령 부인이 그 비선 라인의 전달 창구 역할을 맡는다.
“정식적인 절차를 밟으면 당신한테 전해지지 않는다면서 저에게 가져왔어요.”
대통령 부인이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건네며 꺼낸 말이다. 대통령에게 들어가는 모든 보고서는 대통령 부속실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이 정식 라인이다. 핵발전소 안전성 검사 보고서는 그런 정식 라인을 밟지 못한다. 권부 내 총리를 비롯한 일부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과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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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지난 7월 출범한 김상곤 교육부호가 <판도라>의 청와대와 비슷한 상황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난 봄 정권 출범 전후 시기부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본부에서 다양한 물밑 경로를 통해 교육부와 대화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회 문제를 포함하여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제 폐지와 관련된 현장 목소리와 의견을 교육부와 청와대에 전달하려고 애써 왔다.
어찌된 일인지 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은 전교조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다.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꿀 먹은 벙어리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전달 창구가 막혀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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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핵발전소는 노후 핵발전소다. 안전성에 치명적인 하자가 있어서 장기간 세밀한 조사 후 가동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태다. 핵발전소를 총괄하는 대한수력원자력주식회사와 이들을 관장하는 총리실에서는 이 문제를 간단히 묵살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흑막 뒤에서 파이를 나누는 이익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총리는, 그의 실질적 통제권 아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 부속실 단계에서 보고서를 정지시킨 뒤, 졸속 검사를 거쳐 한별 핵발전소를 재가동시킨다. 이를 위해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도 불법적으로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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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교피아(교육 마피아)’라는 말의 출생지다. 몇몇 특정 대학 교육학과 라인이 부서 내 요직을 꿰차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아다닌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교육 적폐의 총본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교육부 내 교육 관료들 중에 개혁 주체로 보기에 치명적인 하자가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근혜 정부 기간 이루어진 교육 적폐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일조한 부역 관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를 샅샅이 조사하여 조직을 일신해 다시 세워도 개혁 일선에 나서기에 한참 모자라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김 장관은 이를 그다지 엄중한 문제로 보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청와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제 청와대가 발표한 국가교육회의 위원 명단을 보았더니, 11명의 민간위원 가운데 현장 교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정책자문위원회 학교교육혁신분과 위원 11명 명단에서도 현장 교사는 보이지 않았다.
교육부 관료들에게는 극심한 현장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학교 현장의 실태나, 학생과 교사의 생생한 목소리가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해질 리 없다. 현장과 괴리된 헛발질 정책, 일의 선후나 경중이 뒤바뀐 제도가 급조되어 전달되는 이유가 대체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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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핵발전소는 진도 6의 지진으로 생긴 냉각수 누수와 이어지는 멜트 다운(핵연료가 녹아내리는 현상) 때문에 폭발하고 만다. 이후 영화는 수많은 인명 손실과 대규모 재난 행렬이라는 익숙한 비극 서사를 따라간다.
교육부 관료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금의 교육개혁 정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자꾸만 불길한 궁금증이 이는 건 내 삐딱한 성정 탓일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영화 <판도라>의 공식 포스터 중 하나다. '다음(Daum) 영화'(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0699)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