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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낸 뒤 주변에서 ‘대단하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쟁쟁하다’라는 형용사도 심심찮게 들렸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으나 한편으로 아주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겨 책을 낸 것이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일일까.
페이스북에서 느낀 분위기를 종합한 결과이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유능하거나 유명하다고 알려진 교사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대중적으로 잘 포장되어 유통되는 문화가 교사들 사이에 은연중에 퍼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다. 교사들은 그들을 소비하면서 어떤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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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정주에 대한 별칭으로 ‘현대시의 정부(政府)’라는 말이 있다. 십수년 전 어느 잡지에서 평문 청탁을 받고 글을 쓰기 위해 참고자료를 뒤적이다가 처음 만난 표현이었다.
‘시’와 ‘정부’의 조합이 낯설었다. 정색하고 쓴 듯한 과장적인 어조도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문학자들의 언어 구사법에서 보이는 ‘뻥’이야 예삿일이다. 그렇게 여기고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글을 가다듬으면서 곱씹을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다.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런 경지에 올라서야 하지 않을까. 그 자체로 완전하게 작동하는 하나의 정부처럼, 시인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자부심이나 자긍심이 그런 절대적인 차원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3
많은 교사가 학교 안팎에서 너무 자주 자존감이 훼손되는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무너진다. 교사를 대상화하는 제도와 정책으로 교사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교육 당국, 그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학교장, 가벼운 지식 전달자 정도로 생각하는 학생이나 학부모 들이 그들 앞에 서있다.
이제 그들은 ‘교육의 정부’가 아니라 시스템 말단의 한귀퉁이에 자리잡은 부품이 된다. 그 자신이 갖고 있는 삶의 철학과 태도가 아니라 시스템이 내리는 요구와 명령이 그의 삶을 이끄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된다. 이른바 유명 교사를 소비하면서 스스로 만족을 찾으려는 심리적 기제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교사 한 명 한 명이 자기 스스로를 ‘교육의 정부’처럼 여겼으면 좋겠다. 교사가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낼 때 각자 하나의 완전한 정부가 되어 있다면 좋겠다. 나는 교사가 마땅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정부’인 교사 각자는 매일 수십 명에서 백수십 명에 이르는 ‘시민’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