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히스의 <계몽주의 2.0>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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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계몽주의 2.0>을 읽었다. 순전히 제목에 들어있는 ‘계몽’이라는 말 때문에 손에 쥐게 된 책이다. 정색하고 진지하게 말해 보자면, 계몽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이는 우리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계몽의 이유와 근거를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게 해줄 것 같았다.
웃음과 유머가 시대의 총아처럼 각광을 받는 세상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감성과 감각적 흥미가 우선 강조된다. 그러다 보니 이성과 합리를 따지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사실과 이론에 근거해 하나하나 따져보자고 말하면 누굴 가르치려 드느냐며 눈부터 부라리는 사람이 많다.
계몽이라는 말은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고리타분한 ‘꼰대 선비’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은 이성과 합리와 진지함을 강조하는 사람을 시대착오적인 반편처럼 취급하면서 혐오하는 태도를 보인다. ‘진지충’과 ‘씹선비’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누군가의 말처럼, “진지함은 벌레(蟲)가 되고, 의문은 반지성에 묻히”는 세상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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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문해 본다. 이성과 합리의 태도를 무시해도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충분히 성숙해 있는가. 1700만 촛불의 힘으로 국정을 농단한 최고 권력자와 그 수하들을 감옥으로 보냈으니 그렇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불과 5년 전만 해도 ‘503호’를 전혀 다르게 평가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그가 순수한 애국자이자 약속을 잘 지키고 청빈한 삶을 꾸려온 정치인이라고 칭송했다. 거짓말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부정부패니 사익 추구니 하는 말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무지에 따른 실수나 미망(迷妄)의 결과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조지프 히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책에 펼쳐 놓은 관점과 취지를 빌려 말한다면 그들, 아니 우리 모두는 제대로 ‘제정신(sanity)’을 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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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진실스러움(truthness)’이 있다. 2005년 미국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가 만들어낸 신조어가 진실스러움이다. 사실관계에 기초한 주장을 펴는 대신 감과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따져 보면 진실이 아닌데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뜻한다. 콜베어는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견해’를 가질 권리는 있었지만 자신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사실관계는 전혀 중요치 않고 느낌과 인식이 전부가 됐습니다.” (10쪽)
진실이 아니라 진실스러움을, 합리적 이성이나 아니라 감(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만들어진 태도가 상식 보수주의다. 상식 보수주의자들은 익숙하고 직관적인 상식이 ‘감’과 ‘가치’와 쉽게 결합하면서 사람들의 가슴에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상식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이나 전면에 서게 되면면 합리적 사고보다 직관이, 숙고보다 감이, 머리보다 가슴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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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에 의하면 상식 보수주의의 핵심 특징은 전문가에 대한 적대감이다. 보수주의 전통에 기반한 반합리주의, 반지성주의, 반엘리트주의가 좌파의 이론 회피증과 결합하면서, 우리가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할수록 보수주의의 상식 이데올로기가 말하는 ‘평범한 지혜’가 진실처럼 통용된다.
상식 보수주의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풍토에서는 유력한 정치인의 거짓말이 진짜처럼 간주된다. 예컨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널리 퍼뜨린 ‘복지 여왕’ 이야기가 그렇다. 시카고 어느 여성이 80개의 가명에 30개의 주소, 12개의 사회보장 카드, 4명의 남편을 두고 납세자의 돈 15만 달러를 슬쩍했다는 게 복지 여왕 이야기의 골자다.
저자는 미국에서 레이건이 ‘진실스러움’ 시대의 서막을 알린 한 장본인이었다고 평가한다. 복지 여왕 유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여러 차례 지적 받았는데도, 레이건은 이전의 정치인들과 달리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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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유의 ‘진실 무시 전략’이 태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의 변화도 한몫했다. 24시간 뉴스 채널 같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구축되었다.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1980년 세계 최초의 24시간 뉴스 채널인 시엔엔(CNN)이 개국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엔엔과 같은 24시간 뉴스 채널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이들 뉴스 사이클이 정치 동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세 가지다. 속도, 압축된 메시지, 반복. 이들의 구체적인 작용 양상은 이렇다.
무언가가 일단 뉴스 사이클을 타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반복되며, 반복될 때마다 보는 이에게 연상을 일으킨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볼 때 속도, 압축, 반복이 의미하는 바는 상대에 대해 무엇이라고 공격을 하든 상당한 시간 동안 그것이 뉴스 사이클에 떠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오류를 지적받지 않은 상태로 더 오래 뉴스 사이클에 머물수록, 더 많이 반복되고 더 빨리 대중의 뇌리에 사실로 각인될 수 있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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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의 정치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히스는 개인 차원의 합리성과 이성에 호소했던 과거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지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계몽주의 2.0’이다. 궁극적 목표는 합리적 정치다.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 조건을 만드는 데 (개인이 아닌 다수 시민의-필자) 집합행동이나 ‘슬로 폴리틱스(slow politics)’ 들이 필요하다.
히스는 우리를 속도의 노예로 만드는 ‘패스트 라이프(fast life)’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패스트 라이프가 촉진하는 ‘보편적인 멍청이 만들기’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숙고를 견고하게 지켜 내는 것이다. 이에 기반해 현실적인 조건 파악, 숙의, 집합행동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주문한다.
슬로 폴리틱스 역시 패스트 폴리틱스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가능해진다. 패스트 폴리틱스는 우리의 집중과 관심을 끌려고 미친 듯이 경쟁하면서 우리의 의사 결정 방식을 변화시켰고, 우리를 데마고그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방식이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정치는 지적인 역량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육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감에 기초해서는 안 되며 경험을 통한 배움의 기초 위에 지어져야 한다. (441쪽)
* 조지프 히스 씀, 김승진 옮김(2017), <계몽주의 2.0>, 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