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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20. 2018

그 우주인을 만났을 때 우린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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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권력’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동안 교육 생태계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의 많은 부분이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교육 권력 배분 시스템의 변동이나 추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냐는 내 문제의식이 마냥 허랑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2


제도권 학교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법령의 통제 아래 있는 공공기관이므로 학부모들이나 일반 시민들의 민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근년 들어 강력한(?) 민원성 전화나 방문 때문에 상당수의 학교와 교사가 몸살을 앓는 사례들을 자주 보고 들으면서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학교가 민원을 처리하는 곳인가.     


학교가 교육기관이라는 원칙적인 입장에 따를 때, 적어도 내 감각으로는 민원을 처리하는 제도권 기관으로서의 학교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이를 뒤집어 그간 교육 권력의 중심 추가 학교(교사) 안쪽에 치우쳐 있다가 이제 서서히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식의 해석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다.(이런 추이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일단 유보하자.)     


내가 보기에는 이즈음 부쩍 부상하고 있는 몬스터 페어런트(monster parents), 이른바 ‘괴물 학부모’ 문제의 이면에도 이런 점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제도권 학교의 역사를 돌아볼 때 진상 학부모 문제는 상수였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진상질을 벌이는 학부모의 범위다.     


지난날의 진상 학부모들이 상당한 재력이나 사회적 권세를 가진 이들로 한정되었다면 최근에는 다수의 평범한 학부모들이 그런 범주에 속하게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 교육 권력을 구성하는 힘의 상당 부분이 사회구조적인 변동의 결과 학부모들에게 옮아갔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이런 변화에 대한 비평 역시 다음으로 미루자.)     


3     


나는 교육 권력의 문제를 거칠게 ‘누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가르칠지를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이해하고 싶다.     


10여 년 전까지는 그 질문의 모든 것과 관련한 선택과 결정을 거의 국가가 독점하였다. 국정교과서와 국가교육과정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2009년경에 혁신학교가 태동하면서 그 견고한 국가주의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 1000여 곳에 이르는 혁신학교에서는 교육 권력의 상당(?) 부분이 학교와 교사에게 있다.     


이는 동시에 학교 밖에서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신호가 되었다. 나는 민원을 처리하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는 학교, 몬스터 페어런트의 표적이 된 학교 들이 그렇게 해서 출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교육 권력과 관련한 이런 추이나 변동은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질까. 그에 따라 바뀌고 있는 교육 생태계의 전반적인 변화에 대해 우리 교사들은 어떤 평가나 판단을 내려야 할까. 과문한 나로서는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명쾌하게 내리기 힘들 것 같다.   

  

다만 나는 교육부 차원에서 거시적인 제도 개변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고 있는 교육 권한 배분 논의나, 학교 자치 활성화를 위한 물적 기반 조성에 힘쓰고 있는 전국의 몇몇 시‧도교육청 움직임 들을 고려할 때 교육 권력 배분 시스템의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사, 나아가 학교가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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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변화의 흐름을 얼마나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였는지 반성해 본다. 그러니 ‘민원 처리 학교’를 자조하는 학교라면, 그동안 스스로 학교 담장 밖과 어떻게 소통해 왔는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 몬스터 페어런트에 이를 갈기에 앞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창을 녹여 방패로 만들어 학교를 더 힘들게 하는 더 큰 권력(정부, 정치권, 언론)에 함께 맞설 노력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안타깝게도, 나 스스로도 그렇지만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는 많은 학교와 교사가 여러 가지 이유로 갇힌 ‘섬’처럼 살고 있다. 세상에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그들은 자신만의 성채를 섬 둘레에 겹겹이 에워싼 채 살아간다. 그럴수록 우리가 그나마 내는 아우성은 거대한 바다와 성채에 갇힌 섬 안에서만 메아리칠 뿐 세상으로 퍼지지 못한다. 불행한 일이다.     


오랜만에 지구별을 찾은 먼 옛날의 지구 출신 우주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새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뀐 지구가 낯설었던 그 우주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그러다 우주인은 어느 학교로 가 그곳이 그 먼 옛날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그 우주인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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