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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01. 2018

우리는 우연의 자식들이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새롭게 맞이하며

    

새 학년 새 학기 개학 전날이다. 올해 나는 비담임이다. 학교폭력 업무를 맡는 데 따른 일종의 혜택(?) 같은 조치에 따라 담임을 맡지 않게 되었다. 담임을 맡지 않으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한껏 게으르게 살고 있으나 더 게으르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학교를 여유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나만의 어설픈 농성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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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특별한 교육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 교육의 목표인 민주 시민 양성을 늘 상기하면서, 학생들이 교양과 지성을 갖춘 주체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싶을 뿐이다.     


학생 지도 계획이나 수업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 교실에 들어가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 아쉬울 때가 있다. 이와 반대로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준비한 결과 교실 상황이 매끄럽게 전개되고 수업이 부드럽게 펼쳐지는 상황에서도 종종 불안감을 느낀다. 부끄럽게 고백하건대 그 매끄러움과 부드러움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올바른지 판단하기 힘들 때가 많아서다.     


교사는 교실 속 상황이 자기 뜻과 계획대로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원한다. 교사는 자신이 그려놓은 일련의 전개도에 따라 학생들이 생각하고 활동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러한 상황들이 교육적으로 어떤 의미가 어느 정도로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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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은 아름답지만,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다. 우리는 우연의 자식들이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우리가 마주치는 삶의 모퉁이는 우리가 전혀 예측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다.     


학교와 교실은 더욱 그렇다. 학교는 계획표가 지배하는 관료 조직이 아니며, 교실은 가르치고 공부하는 교사 학생 기계들이 빈틈없이 움직이는 공장이 아니다. 그들의 움직임과 활동은 국가교육과정과 학교운영계획과 일과시간표와 수업계획서에 따라 규정되지만, 그들의 깊은 내면은 각자 전혀 다른 자신들만의 영혼에 이끌려 자유의 길을 걷는다/걸어야 한다.     


교육 활동에서 계획은 필요하지만, 교사는 그것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지배해야 하는 것은 교육 계획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내면, 또는 고유한 영혼이 아닐까.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이 언제든 틀어지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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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때로 우리는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세운 계획이 교실에서, 그리고 학생을 만날 때 완벽하게 무너지는 경험을 고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교사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기회가 바로 그러한 위기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계획상으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태, 가령 말썽꾸러기 학생의 돌발적인 질문과 이에 뜨겁게(?) 반응하는 동료 학생들의 소란을 혼란이나 문제 상황으로만 간주하는 한 통찰은 일어나기 힘들다.     


계획이 무너지고 틀어져 무산됨에 따라 나타나는 혼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어설프게 맞이하는 나의 용감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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