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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05. 2018

가르친다는 것

막스 반 매넌의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1

     

‘가르친다는 것’을 간단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풍성하게 알고 있는 교과 지식을 바탕으로(내용) 학생과 크게 틀어지지 않는 사이를 유지하면서(관계) 교과 단원에 적절한 수업 방식(형식)을 쓰면 훌륭한 가르침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교과 공부에 몰두하고, 다양한 학습지나 학습 활동 방식을 구안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가르치는 일에는 그 모든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풍부한 교과 내용과 학생과 맺는 원만한 관계와 매끄러운 수업 기술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때로 수업 중에 우연히 나온 하나의 말에 대한 일방적인 강의가 여러 시간에 걸쳐 꼼꼼하게 준비한 모둠 수업 때보다 더 깊은 영감과 통찰을 주었다. 표면적으로 학생과 맺고 있는 관계가 좋아 보여도 깊이와 넓이가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이제 나는 ‘가르친다는 것’이 요령부득의 상징어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스스로 조바심을 내며 불안해 하거나, 가르침의 의미를 모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가르침의 의미를 스스로 엄히 규정해야 마음이 편해지곤 하던 지난날과 분명 다른 모습이다.      


그 사이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가르친다는 것’에는 정답이나 표준이나 기준이나 모범답안 같은 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날 엄한 훈육에 초점을 맞춰 학생을 통제하는 것에서 교직의 보람을 느끼는 듯한 교사를 경멸했던 나는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업의 달인’이야말로 교육 전문가로서 교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질이라고 여겼던 지난날의 관점 역시 이제는 많이 약해졌다.

     

2     


막스 반 매넌(Max van Manen)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 교육학부 교수가 쓴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부득요령의 상징어 같은 말인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탐색한 책이다. 그러한 집필 목표와 방향과 내용을 그대로 제목에 집어넣었으니 야심찬 저작이다.      


그런데 141쪽은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속속들이 파헤치기에 너무 적은 분량이다. 하지만 마지막 쪽을 읽고 책장을 덮는 기분이, 뭐랄까, 정체 모를 고양감이 슬며시 생겨나면서 뿌듯해졌다. 매넌 교수가 얇은 책에 옮겨 놓은,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올들이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나의 저간의 관점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해 주었어서였다.     


매넌 교수는 분명 좋은 교사, 좋은 수업이 어떠해야 하는지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좋은 선생님은 그냥 수학이나 시를 가르치지 않는다. 좋은 선생님은 그가 가르치는 수학이나 시 자체다”(107쪽)라고 말한다. “교사는 가까이 혹은 멀리서 개입하기와 물러서기를 병행하면서 어린이의 성장을 이해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좋은 가르침이나 좋은 수업에 정형화한 틀이나 모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있었다. 그것은 교육에 대한 내 사유와 성찰과 실천의 게으름에 대한 알리바이 같은 것이어서 나는 기분 좋게 만들었다.      


교사는 말이 생명인 직업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교사가 침묵과 같은 ‘말 하지 않음’이 갖는 말하기(의사소통)의 힘을 깊이 깨달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책의 몇몇 곳에서 ‘침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무언의 ‘분위기’가 갖는 교육적인 의미를 힘주어 말한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3     


나는 가르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교육’과 ‘교육적인 것’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가르치는 일이 ‘교육’이며 ‘교육적인 것’인 한 우리는 그 어떤 교사 태도나 수업 기술도 경시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 ‘교육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할 것이며, 그에 관한 사유를 어떻게 깊이 있게 할 것인가다. 매넌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조그만 길잡이 삼아 소개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교육적 고민이나 감각을 기르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교육적 고민은 이런저런 상황에서 여러 아이를 만나면서, 그 아이에게 귀 기울이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습득된다. 교사는 그렇게 아동과 함께하면서 교육적으로 고민할 줄 알게 된다.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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