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May 29. 2018

에르고딕 이론과 대학 입시

시험과 평가의 본질에 대하여

1


에르고딕 이론은 그룹에 대한 정보를 활용해 그룹에 속한 개개인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때 쓰는 원칙이다. 원래 수학의 한 분과에서 쓰이다가 19세기 말 기체의 작용을 연구하던 물리학자들이 가져와 썼다고 한다. 그들은 그룹 기체 분자의 평균적 작동 방식을 활용하여 개별 기체 분자의 평균적 작동 방식을 예측하는 데 활용하였다. 


에르고딕 이론에 따르면 그룹 평균을 활용하여 개개인에 대한 예측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 기체 물리학자들의 시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그룹 기체 분자를 통해 개별 기체 분자의 특성을 알아낼 수 없었다.


2


나는 교육신경과학자 토드 로즈가 쓴 책 <평균의 종말>에서 에르고딕 이론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우리나라 교육 분야에서 명실공히 화약고(?) 취급을 받는 대학입시와 성적 문제를 떠올렸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자. 


수능이나 내신에서 동일한 점수나 등급을 가진 학생들은 모두 같은 능력을 갖고 있을까. 수능이나 내신에서 전체 평균 점수보다 낮은 점수대에 위치하는 학생들은 평균 점수보다 높은 쪽에 있는 학생들보다 실제 역량이 떨어질까. 평균적으로 높은 수능 점수와 뛰어난 내신으로 무장한 '서연고서성한중' 출신 학생들은 여느 일을 할 때도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3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하지만, 나는 시험에서 높은 점수나 등급을 얻는 능력이 인간의 실제 삶에 필요한 재능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시험 문제를 정확히 푸는 능력이 인간 역량이나 재능의 여러 측면을 동시다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버리고 철저하게 효율적인 시험 운영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두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적어도 시험에 최적화한 교육 시스템이 시급히 필요하다거나 중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시험을 통한 평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시험을 치르거나 평가를 받는 까닭은 단지 성장과 발달을 위한 참조점이나 디딤돌로 쓰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성장과 발달이 시험 결과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성한 요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4


구글 이야기로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전까지 구글은 입사 지원자의 SAT(수능시험) 점수, GPA(대학 평균 학점), 학위 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상위층 지원자들을 선별해 채용했다. 얼마 뒤 구글 본사는 만점에 가까운 SAT 성적, 대학 수석 졸업, 하버드 대학교나 스탠퍼드 대학교 등 세계 최고의 명문대 출신 이력자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화려한 스펙은 그들 각자의 재능을 예견하게 하는 지표가 되지 못했다. 지원자들은 점수나 출신 대학의 명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각자 가진 고유의 재능에 따라 회사에 기여했다. 대학입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수능주의자와 학종주의자들이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까.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문 <교육희망>(2018.5.15.)에 실린 칼럼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쿠이 보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