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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26. 2018

세 번의 약속과 기다림

정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 약속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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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작년 이맘때였지요. 선생님 학교를 방문했을 때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해주신 말씀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촛불로 들어선 정부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일 있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연인원 1700만 명의 시민이 장장 6개월 동안 들었던 촛불의 힘으로 국정농단의 괴수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이른바 ‘촛불 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1700만 개의 촛불을 든 시민들이 가진 생각의 색깔은 모두 달랐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같았으리라 봅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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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시민들의 이 준엄한 명령을 어디서부터 받들어야 했을까요. 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로서 당연히 교육 국정 농단의 핵심 적폐인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첫 손가락으로 꼽았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불을 지피고 박근혜 정권에서 최대 화력을 쏟아부어 이룩한 정치공작의 ‘찬연한’ 결과물이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다렸습니다. 아니, 심지어 저는 전교조 내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나 몇몇 주변 사람을 향해 ‘여권(與圈) 의식’이니 ‘침묵 투쟁’이니 하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전교조가 조금 기다리면서 정부를 포함한 범여권에 힘을 모아 주었으면 싶은 바람을 그렇게 피력하였습니다.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 시절의 아픈 기억도 가슴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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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나 근거 없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지난 1년 6개월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법외노조 문제와 관련하여 전교조에게 한 ‘세 번의 약속’을 뚜렷이 기억합니다.


2017년 1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정부 들어서면 우선적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하겠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망 있는 정치인의 한 표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로부터 8개월여 뒤인 2017년 9월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에게 나왔습니다. 비서관은 “정치적 부담이 가장 적은 시기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직권 취소가 가능하다.” 속시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기대감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역시 믿었습니다.


청와대 내 ‘고참’ 수석이라는 사회수석이 2017년 12월에 약속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겠다”라면서 구체적인 시기까지 거론했습니다. 당연히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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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직후였던 지난 6월 19일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사이에 이루어진 면담에서 나온 말을 듣고 반색했습니다.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직권 취소 문제를 법률적으로 검토한 후 청와대와 협의하겠다.”


1년 반의 기다림이 조만간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자 가슴이 떨렸습니다. 때마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주도한 사법농단의 흑역사가 세상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청와대와 대법원의 합작품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5퍼센트라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만큼 정부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부담이 덜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외노조 직권 취소가 곧장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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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된 일이었을까요. 김영주 장관이 말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오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는 불가능하며, 이 문제가 대법원 재심 사항이라는 말을 브리핑 자리에서 쏟아냈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임을 고려할 때 재심을 언급한 것은 오류입니다. 정부의 직권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정부가 법원 판결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행정 처분을, 그것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거나, 위법하지 않더라도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직권 취소가 가능하다는 것은 행정법 교과서에 나오는 ‘에이비씨’(기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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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4년 전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를 법외노조의 벌판으로 쫓아내면서 전교조 교사 34명이 해직을 당했습니다. 현재 그들의 해직 기간이 만 3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당시 관련 법령에 해직 후 만 3년이 지나면 원직 복귀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항을 만들어 넣었다고 합니다. 만약 지금 상황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그들은 영영 교단에 서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범한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소한 약속조차도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정부가 6만여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에게 한 약속임에랴. 저는 정부가 전교조에게 한 ‘세 번의 약속’을 믿고 싶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촛불의 요구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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