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Jun 28. 2018

2040년 학교공공관리협회 연례 세미나 기조 연설문

1


오늘 이렇게 저를 학교공공관리협회의 연례 세미나에 초대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 말씀 드립니다. 학교를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하여 발족한 귀 협회의 유구하고 지난한 노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가, 우리가 그 노력의 의미를 새삼 다시 깊이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


돌이켜보면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2018년이 우리가 학교 공공성 관리 철학의 기조와 방향을 새롭게 다지고 정립하는 중요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 해, 지금은 극소수 이상주의자 교사들의 군소 노동조합으로 전락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법외노조 벌판으로 완전히 추방당했습니다. 전교조 조합원 자격을 끝까지 문제삼은 대법원의 쐐기 판결이 결정타였습니다.


당시 정부 안에는 전교조를 진보적인 교육개혁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극소수였습니다. 정부 내 교육 부문 주요 의사결정권자의 태반은 교사를 지대 추구자(rent-seeker)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이들 의사결정권자들이 지금 이 나라 교육을 책임지는 귀 협회의 초창기 창립 멤버들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3


당시 교사 집단의 목소리를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던 조직이 법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자 정부는 자율 교육 개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추진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 교육권한 배분과 교육자치, 학교민주주의를 표어로 내건 정부의 교육개혁은 실제로는 단위 학교 자율 책임 경영제에 초점이 맞춰 있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학교 공동체 2.0’으로 명명했습니다. 학교 공동체 내부의 의사결정에 따라 학교를 경영하고 외부 기관의 평가 결과에 따라 당근을 주거나 채찍을 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 이전 정부부터 운영해 왔던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제를 존속시켜 지대 추구자인 교사들을 통제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몇몇 지역에서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학교 공동체 2.0’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학교 공동체 2.0’이 가짜 교육자치와 허울뿐인 학교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사들이 학교에서 진정한 자율을 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장선출보직제 도입과, 교사회와 학생회와 학부모회 법제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정부가 강력하게 제지하면서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4


지난 20년간 진행된 학교와 교실 혁명은 의외로 간단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슈퍼 스펙(superspec)과 열정으로 무장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교사들이 우리나라 교사 집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효율성과 신속성을 중시하고, 자발적 복종과 성실성이라는 고귀한 자질을 갖춘 그들은 공공기관으로서의 학교에 최적화된 신인류입니다.


5


이들을 ‘파워 영(Power Young) 교사’라고 부릅시다. 파워 영 교사는 멀티 플레이어입니다. 수업 능력, 업무 수행도, 대인관계 능력 등 모든 측면에서 우수합니다. 파워 영 교사들은 강력한 개별화주의 태도의 지배를 받는 부류입니다. 그렇게 된 역사적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논외로 합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워 영 교사들이 갖는 개별화주의가 앞으로 우리가 키워 나가야 하는 교육철학의 핵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개별화가 공공성을 키웁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개별화한 주체로 인식하는 교사가 고립되고 개별화한 교실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처한 여건과 환경에 따라 교육 시스템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개변할 수 있습니다.


교육 개혁에서 가장 큰 저항 세력이 누구입니까. 변화에 둔감하고, 철학적으로 완고한 고경력 교사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교원노조 그늘 아래 모인 조직화한 교사들 아닙니까. 우리는, 서로 강력하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이들에 맞서 싸워 이기기 힘듭니다.


6


파워 영 교사들은 다릅니다. 지난 20여년간 개별화주의를 체화한 그들은 학교 운영을 위한 학교 내 의사결정이나 인력 구조조정, 예산 분배 과정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사실은 관심이 없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들은 언제든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워 영 교사들은 싸우지 않습니다. 갈등이 학교 내에 불필요한 소란을 유발함으로써 개별화한 학교 주체들의 심성을 해친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간 그들이 눈앞에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달걀상자 같은 학교 교실을 결코 이탈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지켜봤고, 지금 지켜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7


저는 오늘날 다양한 초단기 계약직의 비정규 파워 영 교사들이 최첨단 사물 컴퓨터 시스템이 갖춰진 학교 교실을 순회하고 다니며 4차 혁명에 걸맞은 학생 중심, 창의성과 다양성 중심, 활동 중심 수업을 뜨겁게 펼치는 장면을 감동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이렇게 되기까지 물금 20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30년 전부터 교사들의 교육 활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뭐니 뭐니 해도 효과적인 수업 개선이 교육 혁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사가 자신의 수업‘만’ 개선하면 모든 학교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춰 일찍이 다양한 수업 기술과 교수법을 국외에서 수입하여 학교 현장에 보급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지금 우리가 운영하는 ‘글로벌 티칭 시스템’은 국제 표준과 규격에 최적화한 교수-학습 기법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수업의 효과성이나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을 ‘학생 중심 수업, 활동 중심 수업’에 두고 있습니다. 교사는 종속 변수입니다. 달리 말하면 교사는 학생 수업과 배움의 지원자, 보조자, 조력자 정도의 구실을 하면 됩니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교사들의 교육철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아주 자주, 그리고 매우 강하게 우리의 개혁 드라이브를 제동합니다.


8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학교가 공공(公共)의 것이라는 사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학교는 본질적으로 철저하게 국가와 정부의 관리 아래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공적 공간입니다. 귀 협회의 발족과 지난 20년의 역사가 터 잡고 있는 전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근대적 헌법의 효시로 인정받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1919)의 “모든 학교제도는 국가 감독에 따른다”는 21세기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2040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고맙습니다.


한국교사협회 회장 김교두


작가의 이전글 세 번의 약속과 기다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