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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06. 2018

“그냥 이야기를 해 보길 원하는 겁니다”

11 대 1. 일급살인, 곧 계획된 살인 재판의 최종 평결을 위해 모인 12명의 배심원들이 배심장의 주도 아래 첫 번째 예비투표에서 내린 결과였다. 그 전에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최종 평결이 만장일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더운 날이었고, 각자 정해 놓은 일정과 생업들이 있는 배심원들은 속히 결정이 내려지기를 바랐다. 1명이 무죄에 손을 들었으므로 나머지 11명이 그 배심원만 설득하면 일이 금방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미묘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유죄를 선택한 배심원 11명 사이에 분명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배심장이 유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자 배심장 자신을 포함하여 2번, 3번, 6번, 9번, 11번 배심원 5명이 손을 즉시 번쩍 들었다. 하지만 나머지 1번, 4번, 5번, 8번, 10번 배심원은 주저하듯 하면서 손을 천천히 들었다.


전체가 유죄를 선택한 상황에서 홀로 무죄를 선택한 7번 배심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9번 배심원은, 빈민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피의자 소년 같은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해 노골적인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8번 배심원이 들으라는 듯이 “그렇지, 그래. 항상 하나가 있기 마련이지.”라며 적의를 드러낸다.


3번 배심원은 7번 배심원에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라고 따져 묻는다. 그는 나중에 7번 배심원과 싸움 직전까지 가고, 최후까지 유죄를 고집하다가 입장을 바꾸는 사람이다. 7번 배심원은 “그냥 이야기를 해 보길 원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계속 강경한 유죄 입장을 고수하다가 대세가 무죄 쪽으로 바뀌자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6번 배심원이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할 게 뭐 있소. 열한 명이 유죄라고 하는데.”


이제 7번 배심원은 자신의 합리적인 의심에 기반하여 미심쩍은 증거와 증언들의 문제를 하나씩 지적한다. 그렇게 하여 최초 예비투표에서 나온 11 대 1은 10 대 2, 9 대 3, 8 대 4, 6 대 6을 거쳐 4대 8로 역전된 뒤 결국 0 대 12로 형세가 완전히 뒤집힌 채 마무리된다. 피의자 소년은 ‘무죄’ 평결을 받는다. 레지널드 로즈(Reginald Rose)의 희곡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극화한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나는 ‘성난 사람들’을 보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떠올렸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민주주의를 누리고, 꿈꾸고 있는가. 나는 진짜 민주주의가 99명이 ‘예’를 말할 때 1명이 ‘아니오’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하는 체제라고 생각한다. 99명이 맞고 1명이 틀릴 수 있다. 그 반대 역시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전체가 한목소리를 낼 때 7번 배심원처럼 “그냥 이야기를 해 보길 원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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