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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30. 2018

점수 기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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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10년째 초중고교생 희망직업 순위 목록에서 부동의 1위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교사는 초중고교생 모두에게서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중고교생들이 희망 직업 1순위로 교사를 선택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사가 희망직업 2위로 나타났다.(교육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18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 조사> 참조)     


현재의 교직 '인기' 요인에 대한 해석은 무척 다양하다. 나는 그 중 교직의 직업 안정성과 관련한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 문제, 여기에 안정적인 수입과 일정한 사회적 순위를 보장하는 ‘더 좋은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사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현장 교사들은 장차 교사가 될 만하거나 되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학생보다 점수 좋은 학생이 교사가 되는 것 같다고들 말한다. 교대나 사대를 바라고 준비하는 학생들 중에 교직 자체의 매력이나 사회적 기여도 같은 것을 희망 이유로 말하는 이는 극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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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교직과 교사 이미지가 ‘안정적인 직업, 편안하게 일하는 직장인’이라고 본다. 그런데 동시에 교직과 교사는 안정적인 직업이나 편안한 직장인이되, ‘교육’이라는 특별한 영역을 ‘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전문직처럼 간주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전문성을 규정하는 일은 어렵다.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교육 자체의 특성에다 사회 전체적으로 교직을 전문직으로 보는 관점이 약하다. 이제 (미래, 예비) 교사들은 본연의 전문성 대신 고교 내신 점수, 수능 점수, 임용 시험 점수, 교원 자격 연수 점수, 승진 점수 따위를 나타내는 숫자들에서 교사 전문성의 핵심 증표를 찾는다. 점수가 높으면 더 전문적이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 교사 양성 기관의 목표가 교사가 되는 최종 관문인 임용 시험에 특화된 ‘점수 기계’를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양성 기관에 진입할 때 경험하는 시스템과 양성 기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교육 과정과 교사 현직 임용 순위를 결정하는 시험 들이 모두 이를 방증한다. 그 과정에서 점수가 실력이자 자격을 보증하는 거의 유일무이한 증표처럼 대접 받는 구조가 고착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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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기계’ 같은 한국 교사들이 만들어 가는 한국 교육의 지속 가능 문제를 생각해 본다. 나는 ‘점수 기계’들로 이루어진 모범생 집단이 만들어 내는 학교 문화의 열쇳말이  순응과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직 문화는 개인주의, 관계 지향성, 보수주의 등으로 대별되곤 한다.(‘교직 문화’에 대한 견해는 로티‧진동섭 등 외 쓰고 옮김(2017), 《미국과 한국의 교직사회》, 양서원, 119~120쪽을 참조해 정리함) 교사들은 독립적으로 일하기, 간섭 받거나 관여하기를 회피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년 통일과 동교과 상호 보조 맞추기, 전통적 방법과 과거 경험을 중시하기, 나누기, 그러나 튀지 않기, 협조하기, 그와 동시에 견제하기, 불만 속 순응하기, 느린 변화와 불만 속에서 환경에 순응하기, 의례화와 보여 주기, 행정에 대해 냉소하기의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나는 이 모든 상충적이고 모순적인 태도의 가장 밑바탕에 순응과 순종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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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순응과 순종이 자신이 교사가 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순응과 순종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이를 중요한 생활 가치의 하나처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나는 교사가 이른바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착한 학생’을 유난히 강조하는 배경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런데 학교는 이미 시장 한복판에 내던져진 지 오래다. 교육은 그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인 일이며, 학교는 숭고한 가르침과 배움만 일어나는 순수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마치 정치와 경제와 사회 분야의 온갖 요소들이 뒤섞여 끓고 있는 용광로 같다.      


순응과 순종의 학교 문화를 강조하는 점수 기계들에게, 용광로에서 살아가는 역동적인(!) 학생들이 어떻게 다가올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를 유지할 때가 많다. 나는 오늘날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의 많은 수가 이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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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 문제를 살필 때 역사성이나 통시적인 변천 과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온갖 휘황한 교육정책과 교육 비전이 넘쳐 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 위의 교육이 지지부진하기만 한 까닭을, 일제 강점기와 미 군정과 분단과 독재라는 비정상적인 역사 경로 속에서 자주 찾는다. 미래 한국 교육 역시 지금과 같은 지지부진한 사태(!)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면, 단언컨대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을 ‘점수 기계’를 만드는 시스템에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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