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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25. 2019

글쓰기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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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과 2017년에 살림터 출판사를 통해 책 2권(<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을 냈다. 그 인연 덕분에 언젠가부터 살림터 출판사에 들어오는 초고와 기획안 들을 함께 살피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초고와 기획안에는 책이 정식으로 발간되기 이전에 글쓴이들이 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소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곳곳에 새겨 넣은 소박하면서도 거친 내용 들이 날것 그대로 담겨 있다. 나는 그 생생한 날것들을 읽으면서 내가 글을 쓸 때 적용하는 원칙과 기준, 하나하나 쓴 글들을 전체로 꿰 나가는 방법과 기술, 내 글뿐 아니라 남이 쓴 글을 보는 안목이나 감각 들을 돌아보며 귀한 글쓰기 공부를 한다.     


2     


어제 아침부터 하루 종일 전국에 있는 여러 교사와 교육 활동가와 교육 분야 연구자들이 쓴 책 초고와 기획안들을 읽었다. 방학 전후로 띄엄띄엄 읽어 온 부분을 포함하여 모두 4편을 읽고 의견을 정리했다. 힘들었지만, 학교와 교실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가 다양한 목소리, 언어, 구성 방식, 문체 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각별한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가장 압권은 한 달여 전에 받은 뒤 대분량에 압도되어 방치하다시피 놔 두었던 <민주청서 21> 초고였다. 전체 분량이 1천 쪽을 훌쩍 넘는 이 방대한 저작은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이루어진 민주시민교육 종합보고서 연구 용역 결과물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거시적인 시야와 미시적인 관찰의 조화, 책의 핵심 테마와 관련한 내용 범주의 포괄성, 세부 서술의 철저성 등이 특기할 만한 특장점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나라 시민교육의 역사, 현황, 방향을 종합적이면서도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민주시민교육사에 기념비적인 거작으로 자리매김 하리라 확신한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현재의 건조하고 딱딱한 서술 방식이나 문체가 어느 정도 극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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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원고나 기획안들은 지나치게 대중 추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대중 추수가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독자 대중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글쓴이의 깊은 고민과 성찰이 녹아 있는 글을 욕하면서도 재미있다면서 본다!      


내가 말하는 “지나치게 대중 추수적인 경향”의 글은 그런 고민과 성찰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들이다. 어떤 기준에 따른 고민과 성찰이어야 할까.      


나는 숲과 나무, 변증법적 태도, 사고와 관점의 유연함 들이 글쓴이가 자신의 고민과 성찰을 보여 주는 글을 쓸 때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글에는 개인과 집단, 전체와 부분, 공시성과 통시성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들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쓰는 글은 딱딱한 학술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다. 실상은 논문이나 보고서도 그렇게 써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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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잘 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자주, 많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재적인 영감이나 타고난 필력으로 글을 쓰는 이는 거의 없다. 글을 쓰는 감각이나 능력은 펜을 굴리고 컴퓨터 자판을 치는 손과 팔의 근육의 움직임에 비례한다.      


그런 점에서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글을 꾸준히 써 상당한 분량의 초고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작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매일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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