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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28. 2019

우리 시대의 ‘가벼움’에 대하여

질 리포베츠키의《가벼움의 시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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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벼움’을 머릿속에 자주 떠올리는 것은 ‘가볍게’ 살고 싶어 하면서도 가볍게 살지 못해서일 것이다. 나는 가벼움을 원하면서 ‘무거움’ 주변을 기웃거린 것 같다. 경쾌하게 날아갈 듯한 가벼운 삶을 바라면서 나는 스스로 무거움 쪽으로 걸어간 것 같다. 내가 보인 모순의 행보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가 가벼움을 좇는 태도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를, 질 리포베츠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쓴 책 《가벼움의 시대》에서 찾았다. 이 책에는 가벼움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찬양이나 비난이 없다. 가벼움은 미덕이나 악덕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중요한 인류학적 요구이자 사회조직 원리, 또는 미학적이며 기술적인 가치로 분석된다. 가벼움에 대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접근 결과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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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베츠키 교수는 우리가 지금 인류사 최초로 가볍고 유동적이고 빠르게 이동하는 물질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전제한다. 가벼운 것은 문화 세계에 점점 더 넓게 확산되면서 우리의 일상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상상세계의 구조까지 바꿔 놓았다.     


가벼움은 사회의 (계급, 계층) 구조에 따른 생활양식이나 아비투스(사회화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획득되는 지각, 발상, 행위 따위의 특징적 양태)까지 해체한다. “사회라는 세계는 분리되어 있지만, 가벼운 것의 규범은 모든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가령 사회의 계층 피라미드 반대편 끝에 초부유층의 ‘프롤레타리아화 현상’(프랑스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명명했다고 함.)이 목격된다고 한다. 초부유층이 상상하는 것들이 돈의 거의 없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더는 고급문화를 지향하지 않는 그들은 “똑같은 축구경기를 보고, 똑같이 ‘블링블링’한 사치품을 갖고 싶어하고”, 진과 티셔츠와 후드 스웨터를 입고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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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리된 사회(계급, 계층)가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대정신 같은 것이 된 가벼움은 무죄인가. 

    

누군가는 ‘진지충’의 감상으로 폄하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념’이나 ‘혁명’이나 ‘지성’ 같은 말이 시대착오적인 구닥다리 단어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자 말마따나 오늘날 세계는 거대한 이념 갈등의 역사적 역할이 쇠퇴하는 세계인지 모른다. 지적인 것의 힘이나 지식인의 영향력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 지적 생활 자체가 삶의 모델로서 인정받을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배경(가벼운 사고 체계를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 도구주의적 지식과 위안을 주는 철학의 시대)에서는 대중 서적과 사진집, 철학 ‘요약집’, 가이드북, 어린아이들이 볼 수 있는 짧은 철학 교과서 등이 늘어난다. 심지어는 권위 있는 주간지까지 ‘올여름의 스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 같은 종류의 ‘위대한 철학자’ 시리즈를 정기적으로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화된 지적 감퇴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해서 조금만, 그리고 빨리 알고 싶어 하며, 아무 노력 없이 복잡한 것에 접근하고, 게다가 즐거움도 느끼고 싶어 한다. 가벼운 것의 문명에서는 지적 호기심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빨리 되고’, ‘골치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존재한다.”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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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비지상주의의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가벼움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한다. 이와 동시에 가벼움이 아름답고 분별 있는 삶을 이끌어 나가기에 부족하다고 보는 관점에도 십분 동의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진짜 가벼움’과 ‘가짜 가벼움’의 구별이 도움을 줄 것 같다.     


생활방식의 경박한 피상성과 용이함, 쾌락주의를 가벼움과 동류시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에 주목해 보자. 진정한 가벼움은 악착스러운 작업과 규율, 불행을 참고 견뎌 낼 용기를 요구한다. 저자는 그것을, 자신에게 엄격한 제약을 가할 줄 아는 태도과 관련되는 “숙련된 가벼움”이라고 요약한다. 그것은 창조, ‘위대한 스타일’, 자유로운 정신, ‘즐거운 지식’의 가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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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높은 가치가 부여된 가벼움을 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가벼움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으며, 우리가 무거움이라고 여긴 어떤 것이 (진정한 창조와 자유의 출발을 알리는) 의외의 진짜 가벼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학습과 조직화되고 제어된 작업의 가치가, 달리 말하자면 무겁게 느껴지는 속박의 가치가 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아름답고 가벼운 삶은 소비지상주의적인 쾌락주의의 한계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안에 갇혀 있으면 인간성이 모욕당하고, 우리가 인간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 빈약해지며, 발명과 창조와 정신적 자유의 조건이 소멸된다.” (365쪽)     


저자의 문제의식을 빌리면 영원히 가볍거나 무거운 것은 없으며, 절대적인 가벼움이나 무거움에 지배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 또한 없다. 즐겁고 경쾌하게 행동의 가벼움을 추구하되, 그것이 우리에게 내적인 가벼움을 가져오지 않는지 돌아보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다.     


* 《가벼움의 시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질 리포베츠키 씀,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12.20. | 385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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