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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란 무엇인가.”
어느 강연에서 처음 이 질문을 받은 파울루 프레이리는 걱정스러웠다고 합니다. 대화의 교육을 실천하고 강조하는 교육자인 그가 왜 이 단순한 형식의 질문을 받고 걱정했을까요. 아마도 질문이 너무나 본질적이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나는 책에서 “걱정스러운 질문”이라는 표현을 보며 곤혹스러워 하는 그의 표정을 상상했습니다.
프레이리는 그 질문을 집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 질문은 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계속 따라다녔다고 한다. 프레이리는 그것을 계속 궁리하다 마침내 안토니우 파운데즈와 함께 <질문의 교육학에 대하여>를 썼다고 합니다.
2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는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 학생은 더 잘 배우기 위해서 좋은 질문을 잘 해야 합니다.
질문을 잘 해야 한다는 것에 지레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 질문이나 던지면 됩니다. 궁금한 것,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파울루 프레이리는 질문하는 행위가 살아 가는 행위, 존재를 만들어 가는 행위, 학습하고 창조하고 연구하고 알아 가는 행위와 묶여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질문이 유효하다고 말하며 “어떤 답도 결정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한때 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가령 어떤 자리에서 내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예로 들어 봅시다. 함께 모인 사람들은 그런 책 정도는 다 읽었다고 전제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때 나는 명색이 국어 선생인데 이런 책도 읽지 않았냐고 힐난을 받을까 감히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합니다. 속으로만 부끄러워 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제 저는 제가 모르는 것은 과감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모르면 물어서 들으면 됩니다. 자신의 무식과 무지를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당당히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3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던지거나 듣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진짜 좋은 질문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상과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질문이 나를 성장시킵니다. 살아 가고 존재하는 일이 질문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질문에 따라 살고 존재해야 할까요.
스스로 정말 간절한 질문을 자주 던질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이리에게는 그 자신에게 익숙했을 법한 “질문이란 무엇인가?”가 새삼스럽게 묵직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이었으니까요.
당신에게는 지금 어떤 질문이 따라 다니고 있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