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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06. 2019

“알록달록한 꽃이 보일 듯한 수업”

첫 순회 수업을 마치고

1


교직 운명 속에 있었을까. 올해 순회 수업을 한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순회 수업 이야기가 나왔다. 사립학교 교사라 종종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내심 기대하곤 하였다.


번번이 막판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이웃한 고등학교 2학년 4개 반 학생들과 함께 1주일에 4시간 문학 수업을 하게 되었다. 5년 전까지 같은 재단 산하 학교인 여고에서 수업을 한 이후 처음으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이다.


2


반별로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수업이라 마음이 가붓하였다. 나는 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살짝 엿볼 수 있는 활동지를 만들며 수업을 담담히 준비하였다. 얼마 전에는 미리 학교를 둘러보았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캠퍼스가 주는 느낌이 포근하여 참 좋았다.


오늘 두 번째 반 수업이었다. 경수(가명)가 나와 함께하는 수업이 어땠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썼다.

 

“즐겁고 활기찬 행복이 넘쳐 나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꽃이 보일 듯한 수업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자 고등학생 손끝에서 나온 표현치고는 조금 오글거리지 않는가.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활동지에 빨간 줄을 긋고 이렇게 써 주었다.


“부담 팍팍 생기지만 노력할게!”     


3


나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꽃이 보일 듯한 수업”이라는 구절이 담긴 경수 글을 포함하여 활동지에 쓰인 다른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읽은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에린 그뤼엘 씀, 2014, 알에이치코리아)가 떠올랐다.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책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는 문학, 곧 사람의 언어가 갖는 놀라운 힘을 보여 준다. 그뤼엘 선생님은 다른 교사들이 교육을 포기한 절망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게 만들었다. 문학적 언어에 대한 믿음과 그런 글쓰기의 결과였다.

    

4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붕괴와 무너진 교실을 이야기한다. 수업을 마치고 부끄러움과 좌절과 절망을 느낄 때마다 다 내려 놓고 싶어 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다.

 

나는 그뤼엘 선생님이 쓴 글과, 그에 바탕한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단 한 명의 교육’을 상기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런 ‘단 한 명’으로만 계속 이어지는 교실 수업은 없다고 믿는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다. 말과 글의 힘이 막강하게 작동하는 교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말과 글의 힘이 중요하지 않은 교과나 과목이 어디 있을까. 경수가 기대하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꽃이 보일 듯한 수업”이 그런 말과 글의 힘이 뜨겁게 작동하는 시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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