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자로서 교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가장 큰 ‘무기’가 언어라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언어 능력이다. 언어 활동 측면에서 보자면 교사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교사에 따라 그중 어느 것은 다른 것보다 더 낫거나 부족하다. 그럴 수 있다. 교사는 언어 능력이나 활동에 전지전능한 신이나 달인이 아니다. 대신 나는 교사들이 언어의 신이나 언어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위적인 전제로 기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교육의 태반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말 없는 침묵의 교육은 아주 특별한 순간에나 이루어지는 일이다. 교사는 언어로 교육을 시작하며 언어로 교육을 끝마친다. 교사는 평생 언어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교육 현장의 현실이 내 그런 바람과 크게 다른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글에는 우리나라 교사들이 매우 불편해 할 만한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어떤 교사는 그 이야기들이 내 제한된 관찰이나 편협한 주견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런 일방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교사의 언어 활동을 일반화하여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며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분들께 이 글을 읽는 일을 멈추시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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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점에서 교사들은 말하기의 달인들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이가 현명한 독자라면 “말하기의 달인”이라는 표현 뒤에 숨은 말뜻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안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교사들이 불필요하거나 그다지 깊은 의미를 찾기 힘든 말을 아주 자주, 그것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뱉어 내는 부류의 직업인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대체로 교사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에 대한 호오가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말이다. 보통 교사들 스스로 교직이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들에 비추어 보면 말을 많이 하는 교사들의 모습이 비난거리나 조롱의 소재가 되는 것이 지나치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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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교사들이 내보이는 독특한 화법이나 말하기 특징을 한 번쯤은 우리 모두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렇게 교사의 말하기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는 일이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교사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투의 화법을 즐겨 쓰는 직업군처럼 묘사되는데, 이러한 어투는 교사 자신을 전형적인 ‘꼰대’로 만들어 버리는 데 일등공신으로 작용한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를 희화화해 묘사할 때 장광설을 늘어 놓는 장면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말이 많다는 사실 자체는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교직의 한 특성처럼 이야기될 때는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이는 교사가 상황이나 맥락에 맞게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말하는 능력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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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를 제외하면 교사들이 나머지 언어 활동 유형들에서 내보이는 태도나 능력은 별로 높게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는 듣기에 취약한 교사들이 너무나 많다. 상담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학생과의 대화 현장은 교사의 일방적인 조언과 훈시로 이루어지곤 한다.
내가 보기에 학생 말을 끝까지 경청하면서 진심으로 공감하는 태도를 내보이는 교사는 흔치 않다. 이른바 ‘학생 수용소’처럼 시작된 근대학교 시스템 자체가 교사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측면이 크다. 하루종일 꽉 짜인 일정에 따라 다수 학생들을 상대해야 하는 교사들은 학생 말을 경청하거나 학생에게 공감하지 않아도 되는(않아야 하는!) 수만 가지 이유와 근거를 수년 동안의 교직 경험과 학교 관습법을 통해 배워서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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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과 쓰기 분야에서는 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진다. 2010년대 전후로 출범한 혁신학교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교사들이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흐름이 형성되기는 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뜨거운 유행처럼 번진 ‘전문적 학습 공동체’ 역시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개별 교사가 일상의 마디마다에서 얼마나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확신에 찬 답변을 내놓지 못하겠다. 대다수 교사들은 책 읽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이 읽는 책의 종류나 범위가 제한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나는 교사들 사이에 ‘쉽고 재미 있는 책 읽기 편향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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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문제는 좀 미묘한 구석이 있다. 교사들은 쓰기를 많이 하며, 때로 교사의 쓰기는 교직 전문성을 가늠하게 하는 핵심 증표처럼 간주된다. 교사들이 칠판에 하는 판서는, 비록 교과서 지식이나 정보를 정리하는 단순 작업에 불과하다며 폄하하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상당한 종합적 사고력이나 체계화 능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은 수업 계획서 같은 데 들어가는 문장들을 수시로 만들어 써야 하며, 학습지나 활동지의 지시문이나 구체적인 학습, 활동 내용들을 구안하면서 고도의 쓰기 감각을 활용하여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학교생활기록부 같은 곳에 실리는 학생 평가 문장들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그 시간은 교사들이 의도치 않은 창작 시간을 경험하는 때이다. 더군다나 학생부 쓰기는 국어를 가르치든 체육을 가르치든 학교 교사라면 모두가 예외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쯤이면 교사들이 쓰기의 전문가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유보하려고 한다. 대신 나는 교사들의 쓰기 활동이 글‘쓰기’가 아니라 글‘짓기’라고 이해한다. 그때 교사의 쓰는 행위는 진정한 의미의 글쓰기가 아니라 업무를 위한 문장 만들어 내기의 차원으로 이동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