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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19. 2019

교무실의 김이박최정 선생님

호모 라이터스_글쓰기의 민주주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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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에는 출입문이 3개 있었다. 출입문이 3개씩이나 달리게 된 것은 25평 정도 넓이의 교실 두 칸을 터서 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학교 전체 교사의 절반 정도인 25명이 그곳에서 북적이며 지냈다. 우리는 그곳을 제1 교무실이니 본 교무실이니 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곳 그 자리에서 내 교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2000년이었다.


2


교무실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건물 주출입구를 기준으로 맨 안쪽(서쪽) 중앙에는 교감 자리가 있었다. 교감 책상의 전면은 나머지 교사 24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교사들은 6인 1조로 3명씩 마주보는 대형으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3명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등짝을 교감에게 항상 보여야 하고, 나머지 3명은 고개만 들면 저 앞쪽으로 교감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는, 기막힌 ‘감시 시스템’ 기조의 좌석 배치였다.


내 자리는 출입문 3개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첫 번째 출입문 안쪽 바로 앞에 있었다. 문짝과 내 책상 한쪽 귀퉁이 사이 거리가 채 1미터를 넘지 않았다. 교감을 제외한 교사 대다수와 교무실에 일이 있어 찾아온 학생들이 수시로 그 좁은 통로를 오갔다. 내 자리 옆을 지나쳐 가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옷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조그만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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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옹색해 보이는 그 자리는 출입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자주 어수선해졌다. 그때마다 바깥바람이 무시로 밀려 들어 와 깜짝 깜짝 놀랐다. 그렇게 불편한 자리였는데도 별로 싫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눈길을 전면으로 향하면 저 멀리 교무실 안쪽 끝자락에 앉아 있는 교감이 바로 보였다. 그런데 다행히 두 좌석 사이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길을 마주칠 가능성에 대비한 ‘사회적 제스처’를 취하거나 그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일 없이 교무실 전체를 조감하는 객관적인 관찰자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나는 종종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을 휘 둘러보았다. 수업이 있는 선생님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뒤의 교무실 풍경은 고적한 산사와 비슷했다. 선생님들은 책상 위에 고개를 파묻고 교과서에 무엇인가를 써 넣거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적요 속에 퍼진 듯한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묘하게 만든 것이 단지 교무실이라는 공간의 물리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 한 분 한 분이 만드는 풍경화의 구도와 색깔이 내게는 너무나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4


그때 내 눈에 비친 교무실 풍경화를 김씨, 이씨, 박씨, 최씨, 정씨 성을 가진 선생님들을 주인공 삼아 간략하게 묘사하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김이박최정 선생님들을 내가 보낸 학교의 특정한 선생님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초.중.고교 교무실의 풍경을 채우는 선생님들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들 중 한 분은 지난날 우리 자신이었거나, 지금 우리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보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특별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김이박최정 선생님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김 선생님은 책을 좋아한다. 책을 자주 사서 읽으며, 주변에 있는 교사들에게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신다. 김 선생님의 교무실 책상 위 책꽂이에는 나란히 서 있는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들과 교양서들이 자태를 뽐낸다. 나는 이들이 애독가이자 지적 탐구자로서 김 선생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상징물처럼 다가온다. 김 선생님은 소박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절도 있게 말도 잘한다.


나는 교직에 들어오기 전에 교사라는 직업군이 책 읽기나 글쓰기를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겠는가. 교사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매일같이 하는 일은 교과서와 칠판에 무언가를 쓰고 학생들의 학습 자료에 사려 깊은 평가 언어들을 새겨 넣는 ‘집필 작업’이다.


교사들은 또 얼마나 말을 잘하겠는가. 나는 교사들의 교실 수업이 구술 언어로 이루어지는 지적 여정을 보여 주는 평범하면서 위대한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를 부리는 일에 관한 한 교사들은 지상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았다. 김 선생님은 나의 그런 시선을 충족해 주는 훌륭한 본보기였다.


5


교무실에는 김 선생님 같은 분만 계시지 않았다. 이 선생님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째려보고 있다. 플라스틱 화면을 반쪽으로 쪼개 버릴 것 같은 맹렬한 기세가 느껴진다. 이 선생님의 두 손은 키보드 위에 놓여 있다.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지금 이 선생님은 입술을 계속 잘근잘근 씹고 있다. 그즈음 나는 이 선생님이 우수 교원 국외 연수 공모에 신청하기 위해 연구 계획서를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박 선생님과 최 선생님은 바퀴 달린 의자 등받이를 뒤로 한껏 젖혀 놓은 채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다. 둘 다 머리에 헤드폰을 쓰고 있다. 그래,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목을 돌리는 체하며 박 선생님과 최 선생님 쪽을 흘깃거린다. 박 선생님 눈길이 닿는 곳에 젊은 사람이 손짓을 유려하게 써 가며 도표를 설명하는 원격 연수 동영상 화면이 보인다. 최 선생님이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에서는 건장한 남자 배우 둘이 격투신을 벌이는 영화의 한 대목이 흘러가고 있다.


정 선생님은 연구파 교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지금 정 선생님은 고개를 앞으로 90도 가까이 꺾고 의자에 앉아 있다.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몇 권의 책 속으로 금방이라도 파고 들어갈 기세다.


정 선생님은 오른손에 삼색 볼펜을 단단히 쥐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이 책 저 책을 보며 교과서에 글자들을 촘촘하게 새겨 넣고 있다. 나는 그 글자들이 깨알 같은 크기로 되어 있으며, 글자들이 담고 있는 내용의 성격에 따라 빨간색, 파란색이 골고루 쓰이리라는 것을 잘 안다. 정 선생님이 하는 수업의 색깔은 그 글자들의 많고 적음이나 색깔의 혼합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정 선생님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이른바 ‘교재 연구’를 부지런히 하는 교사이다. 정 선생님의 교재 연구는 아침 출근 직후, 쉬는 시간, 수업이 없는 시간으로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수업 준비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데도 정 선생님은 늘 수업하는 게 어렵고 힘들다고 내게 하소연한다. 나는 정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교실 학생들이 엎드려 있거나, 짝꿍과 노닥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6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지금 교사 집단 전체를 매도하거나 희화화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김 선생님이 누구나 존경할 만한 우수 교사로서 예찬 받아 마땅하다거나, 글쓰기에 괴로워하는 이 선생님이 무능력자라며 비난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한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 애정주의자처럼 보이는 이 선생님과 박 선생님을 조롱할 의도가 없다.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의 교육 활동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신 것일 수 있다. 우리의 안타까운 정 선생님은 성실함을 인정받아 모범 교사상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이른 아침 등교하자마자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수업 연구를 하는 교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대신 내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함께 고민해 보자고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다. 왜 이 선생님은 연구 계획서 쓰기를 힘겨워하실까. 박최 선생님은 수업에 도움을 받고 교육 활동 중에 활용하기 위해 동영상 시청 연수를 하고 영화를 감상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분들이 책 읽기와 글쓰기 대신 동영상 시청하기를 더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분들 자신의 자신의 개인적 성향이나 태도가 더 크게 작용해서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교직 생태계 특유의 환경, 문화적 요인의 힘 때문일까. 우리는 정 선생님의 수업 연구 방식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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