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라이터스_글쓰기의 민주주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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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글짓기의 구별법을 상기하면서 우리의 김이박최정 선생님들에게 조언해 보자. 다음과 같은 단순한 원칙 몇 가지를 상기해 보면 좋겠다. 훌륭한 작가들이 언제나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 작가들은 쓴다. 둘째, 작가들은 읽는다. 또 훌륭한 작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쓰는 것이 읽는 것이다. 둘째, 읽는 것이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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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님은 책 읽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가. 이제부터는 책 읽기 시간 일부를 글쓰기에 써 보기 바란다. 나는 김 선생님이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짧게라도 독후감이나 서평을 차근차근 써 나간다면 조만간 자기 색깔이 뚜렷한 글을 쓰는 교사 작가가 돼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쓰는 것이 읽는 것이다! 글쓰기를 힘겨워하시는 이 선생님에게는 책 읽기에 시간을 더 쓰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얻은 지식과 교양과 문장 감각의 도움을 받아 한결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읽는 것이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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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님과 최 선생님에게는 조금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겠다. 이른바 영상 시대다. 지식과 정보를 전파하고 습득하는 데 영상 텍스트가 널리 쓰이는 세상이다. 초․중등생 사이에서는 문자가 아니라 영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박최 선생님처럼 교사들은 교무실에서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자신의 교육 활동을 준비하고 실행한다. 박최 선생님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이 여러모로 유용하다.
다만 나는 박최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성인들 중 59.9퍼센트는 1년에 책(종이책 기준)을 1권 이상 읽는다. 나머지 41.1퍼센트는 책을 단 1권도 읽지 않는다. 어른 5명 중 2명이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셈이다. 책을 1권이라도 읽는 성인들의 연간 독서량은 평균 8.3권이다. 한 달에 어른 한 명이 읽는 책이 1권이 되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 이용 시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공포감을 나타내는 ‘노모포비아’(nomophobia; No mobile phone phobia),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스몸비족’,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기억력이나 사고력 등 두뇌 능력이 감퇴하는 ‘디지털 치매 증후군’ 들은 스마트폰이 야기하는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잘 보여 준다.
나는 박 선생님과 최 선생님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용감한(!) 40퍼센트대의 성인층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박최 선생님이 노모포비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몸비족으로 살다가 디지털 치매 증후군에 시달리며 살고 싶어 할 리도 없다. 그러나 박최 선생님은 무심결에 의자를 뒤로 자주 젖히면 젖힐수록 자신들의 뜻과 무관하게 디지털 중독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다. 나는 두 분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책은 종이책으로 읽고, 글씨는 종이에 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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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파’ 교사 정 선생님은 연구하는 일의 성격을 조금 바꾸셨으면 좋겠다. 나는 교사용 지도서를 활용한 ‘교재 연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연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 선생님이 교사용 지도서를 보는 시간을 조금 줄이거나,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교재 연구를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다.
나는 교사용 지도서가 교사에게 여러모로 유용하지만, 교사가 그에 따라 수업을 진행할 때 교실 색깔을 단조롭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면 (교사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교사용 지도서나 교과서는 교사를 그 저자들의 앞잡이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교사는 교과서나 교사용 지도서 저자의 “앞잡이”나, 그들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중개꾼이 아니다. 나는 교사용 지도서에 의존하는 교재 연구의 폐해를 조너선 코졸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전하고 싶다.
수십 년 동안 교사들은 이런 식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수업을 설계하는 뿌듯함뿐 아니라 예기치 못한 것을 알아내는 지적 발견의 기회도 누리지 못했다. 일요일 오후, 교사는 수요일 오전의 영어나 사회 수업에서 학생들이 발견할 지루한 개념을 학습지도안에 미리 적어놓는다. 이 모든 일에는 두 가지 비극적 요소가 있다. 이런 과정에 의해 교사의 직업적 가치는 기술적 중개로 축소된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현 정권의 정치적 의도에 맞춰 자신의 하잘것없는 재능을 발휘한 교과서 저자들의 앞잡이로 전락한다. - 조너선 코졸 씀, 김명신 옮김(2011), 《교사로 산다는 것: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양철북,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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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 선생님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수업을 설계하는 뿌듯함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뿌듯함과 별개로 정 선생님의 수업은 좌충우돌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정 선생님이 스스로 수업을 설계하여 진행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정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들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코졸은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이 공책에 필기한 내용이나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이 아니라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나는 정 선생님이 수업 연구를 하면서 보내는 일요일 오후나 저녁 시간이 교실을 정 선생님의 특유의 언어로 채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때 정 선생님은 조만간 자신의 눈빛에서 나오는 메시지의 힘으로 학생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수업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