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최악의 지지율을 찍고 봉하 마을로 내려갔다. 그때 나는 노 전 대통령의 뒷모습이 얼마나 쓸쓸해 보였는지 모른다. 2018년 봄이었다.
고향으로 간 노 전 대통령은 동네사람들과 구멍가게에서 막거리를 나눠 마시거나 함께 담배를 피우며 평범한 시골 아저씨처럼 보냈다. 그 소박한 일상들이 신동엽 시인이 <산문시 1>에서 묘사한 대통령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보기 좋았다. 그럴수록 나는 이상하게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두려웠다. 그해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와 정치적 성향이 크게 달랐다.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흉흉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참여정부가 성공한 정부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랐던 사람의 하나로서 그런 이야기들을 한귀로 흘려듣기 어려웠다. 그럴수록 문득 문득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정체 모를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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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좌우 길이가 30센티미터가 넘는 큰 독서대와 연분홍 진달래 꽃잎이 새겨진 도기 찻잔을 구입했다. 그 직전 해에 7년간 이어진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그사이 나는 최종 마감 시한 안에 논문을 제출하고 대학원에서 탈출하기 위해 전공 책 읽기와 학술적인 논문 쓰기에 몰두했다. 극도로 편향된 책 읽기와 글쓰기가 머리와 가슴을 갉아 먹고 있었다. 그 깊은 늪에서 빠져 나와야 했다. 독서대와 다구 세트는 그런 의지의 표현이었다.
나는 수업 사이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대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다양화하자며 맨 처음 구입한 《두보 평전》이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나는 감히 ‘시성(詩聖)’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냉철하게 보는 눈을 갖고 싶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는 고전과 인문 교양서와 문학류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황견의 《고문진보》와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함석헌 선생이 주석을 단 《바가바드기타》 같은 책들이 《두보 평전》 뒤쪽에서 독서대에 오를 순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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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매점에서 산 검은색 표지의 2000원짜리 공책에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 첫 장에 적힌 일자는 2008년 3월 13일이었다. 일상의 경험을 기록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성찰하자는 일기 쓰기의 교과서적인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극심해진 무력감을 피해 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일기 쓰기는 2012년 12월 20일에 멈추었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이었다. 그날 나는 일기에 ‘좌절하지 말자’고 썼다.
앞으로 다가올 5년을 가슴 떨며 기다린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무섭다. 두렵다.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니지만 그 힘이 얼마나 큰가?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좌절해서도 안 되겠다. 가슴 속의 신념을 잃지 말아야겠다. 꺼져 가는 열정의 불씨를 되살려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겠다. - 2019년 12월 20일에 쓴 일기(일부)
좌절하지 말자며 의지의 양태를 나타내는 국어 선어말어미 ‘-겠-’을 거듭 쓴 것이 무색하게 기력을 소진시키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최악’의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무력감이 나날이 커져 갔다. 나는 그해를 전후로 학교에서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을 했던 분들의 이름이 조합원 명부에서 뭉텅이로 빠져 나간 사실이 아직도 아프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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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도 2012년 12월 19일을 특별한 해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날 나는 저녁밥을 일찍 챙겨 먹은 뒤 사이사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개표 장면을 보았다.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무심히 보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언론사 4곳에서 진행한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각각 2곳에서 우세하다고 나왔다. 무승부였지만, 나는 문재인 후보의 패배를 직감했다.
이튿날 새벽 전후부터 텔레비전 화면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최초로 과반 이상 득표로 대통령이 선출된 선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선거 등 특별한 문구들이 시청자와 누리꾼들의 눈과 귀로 되풀이하여 전달되었다. 박 당선자는 카메라 앞에서 연신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의 소속 정당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지지자들이 끊임없이 환호성과 박수소리를 만들었다.
패배 진영을 스케치하여 전해 주는 앵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카메라 앵글은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 1500만여 명의 기대 섞인 표정과 그들이 만드는 들뜬 현장과 전혀 다른 풍경을 잡아 화면을 채웠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그를 찍은 1400여만 명의 지지자들은 침통하였다. 입술은 굳게 다물었고, 주먹으로 눈가를 훔쳤다. 일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크게 울었다. 나는 잠을 자는 듯 마는 듯 온밤을 보냈다. 매일 지나는 출근길 풍경들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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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통령 선거가 내게 그토록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5년마다 돌아오는 ‘정치 이벤트’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 같다. 1997년 디제이(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 대학 선배 하나와 함께 밤을 새워 가며 마신 축하주,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놓고 아버지와 벌인 토론들이 그 방증이 아닐까. 그러니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된 사실은 내게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거의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사흘 뒤 나는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 무엇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죽을 것 같았다. 교사이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를 옥죄는 학교 안팎의 문제들을 글로 풀어냈다. 미친 듯이 문장들을 토해냈다. 그때부터 4년간 200자 원고지로 대략 1만 5000매 정도를 채웠다. 매일 원고지 10매 정도씩 글을 쓴 셈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삶의 큰 모퉁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입학이나 졸업, 취업, 결혼, 출산 같이 한 개인에게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마련해 주는 일이나, 예기치 않은 사고나 갑작스럽게 찾아 온 불운, 일을 하면서 얻은 기대 이상의 보람 같은 것들이 모퉁이에 자리잡는다. 나는 글쓰기에 관한 한 가장 큰 모퉁이가 2008년과 2012년에 내 앞으로 다가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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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46년 발표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에서 ‘글을 쓰는 네 가지 중요한 동기’를 밝혀 놓았다. ‘순전한 이기심’. 우리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죽어서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알았던 어른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아름다움의 추구’. 우리는 소리와 소리가 부드럽게 어울리고, 이야기가 탄탄한 구성을 따라 펼쳐지면서 생기는 언어적 리듬감을 음미하고 싶어 쓴다. ‘역사에 남고 싶은 충동’. 우리는 대상을 그대로 바라보고, 뚜렷한 사실들을 쌓고 모아 후대에 유익하게 쓰이게 하려고 글을 쓴다. ‘정치적 의도’. 우리는 정치적인 동기와 목적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