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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25. 2019

“교사는 지성인이다”

호모 라이터스_글쓰기의 민주주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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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적이거나 사회·문화적인 상황이 교사를 책 읽기와 글쓰기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급 길라잡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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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정치적 진공의 영역이 아니다. 학생은 책가방에 교과서와 학용품만 넣어 등교하지 않는다. 교사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학교 바깥에서 경험한 다양한 일들을 담아 안고 학교에 간다. 학생과 교사는 교실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수업이라는 공적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 다른 철학으로 무장한 익명의 사람들이 공적 의사결정 시스템 안에서 결정한 지식 체계, 가치, 문화를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므로 교사가 탈정치와 탈사회에 기반한 교육 활동을 펼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조지 오웰은 예의 글에서 예술(art)로서의 글쓰기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정치성을 띤 태도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 속에 두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고 추론한다. 첫째, 모든 예술 활동은 정치적이다. 둘째,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다. 그래서 나는 조지 오웰의 말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가령 “〇〇로서의 글쓰기”에서 ‘〇〇’을 채우는 단어가 그 무엇이든 모든 글쓰기가 고유의 정치적인 범주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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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하나의 생태계처럼 움직인다. 교사는 교육 생태계를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 사이 어디쯤에 자리잡으면서 때로 교육자처럼, 때로 교육행정 시스템의 말단 관료처럼 살아간다. 교사의 정체성은 이중 어느 한 가지로 명확하게 규정하게 힘들다. 우리는 어제 규정에 따른 엄격한 행정 처리를 강조하던 말단 행정가 교사가 오늘은 유연하고 사려 깊은 교육자가 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이것이 교사의 개인적 성향이나 태도보다 교육 생태계 시스템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결과라고 해석한다.


교사는 정치적인 존재다. 나는 교사의 글쓰기 역시 정치적이며, 바라건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사의 정치성을 사회적 금기처럼 바라보고 취급한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교육을 말하고 실천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교사는 정치적이라고 해야 할 텐데, 사람들은 교사의 정치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거나 교사의 정치적 글쓰기를 극도로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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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든 일이 ‘정치적’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협소하고 편향되게 쓰이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한다. 우리는 학교교육에 존재하는 여러 교과 중 비정치적인 것처럼 보이는 수학이나 과학 교과의 교사들이 비정치적이며, 가장 비정치적인 글쓰기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수학과 과학이 정치가 불가능한 교과이며, 수학과 과학 교사는 ‘순수한’ 교과 학문의 세계를 정치로 훼손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1 더하기 1은 얼마인가?” 같은 수식들이 넘쳐 나는 수학 수업에 어떤 정치적 측면이 있는가. “E=mc2”처럼 암호 같은 공식을 다루는 과학 교사가 모종의 정치성을 염두에 두면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논픽션 작가이자 글쓰기 교사인 윌리엄 진서의 《공부가 되는 글쓰기》에는 다양한 범교과적 글쓰기와 교양교육으로서의 글쓰기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떠올린 생각들을 풀어 가면서 이들 몇 가지 의문에 답을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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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진서는 범교과적 글쓰기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글쓰기를 위한 배움과 배움을 위한 글쓰기. 나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배움이 목표이고 글쓰기는 도구이거나 수단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국어 교사만의 몫이 아니다! 수학 교사와 과학 교사는 스스로/학생과 함께 글을 쓰면서 수학과 과학을 배울 수 있다. 나는 그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의 사고 활동을 명료하게 만들어 주는 힘의 원천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진저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는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나는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을 말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 윌리엄 진서 씀, 서대경 옮김(2017), 《공부가 되는 글쓰기》, 유유, 109쪽.


수학이나 과학 교사가 어떻게 스스로 질문할 수 있을까. 1 더하기 1의 정답을 구해야 하는 교과서 내용 체계는 누가 무엇을 위해 짜 놓았는가. 1 더하기 1이라는 수학적 지식 활동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E=mc2을 선택하여 공부해야 함으로써 배제되는 다른 공식은 없는가. 우리는 E=mc2이라는 공식이 과학의 역사, 그리고 우리 인류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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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나는 교사의 정치성이 교과서에 편입된 주류 지식을 향한 끊임 없는 문제 제기와 질문 던지기에 있다고 본다. 학교 지식은 정전화한 지식(canonized knlwledge)으로, 교과서나 교사용 지침서나 표준 시험을 통해 국가에서 공인한 지식을 가리킨다. 국가와 사회는 학교 지식에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책들을 동원하여 교사와 학생을 옥죈다.[오즐렘 센소이·로빈 디앤젤로 씀, 홍한별 옮김(2016),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착한책가게, 38쪽.] 나는 그와 같은 억압 가제가 학교 주체들을 강제할 때 교사가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문제제기자나 비판자가 되기를, 나아가 학교 지식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지성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성적 정치성으로 무장한 교사의 정체성이다.


나는 독자들이 윌리엄 진저가 보여준 수학과 과학 글쓰기의 사례를 교사의 정치적 글쓰기가 갖는 다양한 측면을 돌아보게 하는 실마리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교사의 정치적 글쓰기가 그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이라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만약 그런 글쓰기가 가능하고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의 이름을 ‘정치적 글쓰기’가 아니라 ‘파당적 글쓰기’라고 붙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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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정치적 글쓰기는 파당적 글쓰기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나는 그것을 ‘지성적 글쓰기’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지성적 글쓰기를 하는 교사는 교육을 둘러싼 권력과 정치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는다. 그때 교육은 개인의 일인 동시에 국가와 사회의 문제이거나, 개인 차원의 일을 훌쩍 뛰어넘는 국가와 사회의 문제이다.


둘째, 교사는 지성적인 글쓰기를 하면서 학교와 교실에서 유통되는 지식의 문제를 냉철하게 인식한다. 나는 파울로 프레이리나 마이클 애플 같은 비판교육학자들을 따라 지식이 결코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고 이해한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해석자나 (재)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는 단순한 지식 중개상이나 전달꾼이 아니라 사고하고 실천하는 지성인이다. 나는 매 시간 수업을 하는 교사의 말이나, 교사의 손 끝에서 생성되는 글들이 매우 각별한 사회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업을 하고 글을 쓰는 교사는 자신의 텍스트를 구상하고 산출하는 ‘저자’이자 ‘작가’이며,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는 학자이자 운동가여야 한다. 헨리 지루가 “변혁적 지성인”으로서의 교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교사의 정체성 역시 이와 같았을 것이다.     


변혁적 지성인은 비판의 언어와 가능성의 언어를 통합한 담론을 개발해야 하며, 교육자들이 변화를 일구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동안 지성인들은 학교 안팎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불의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동시에 절망을 문제시하고 희망을 실천하기 위해, 지식과 투쟁의 용기가 넘치는 시민이 될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 헨리 지루 씀, 이경숙 옮김(2001), 《교사는 지성인이다》, 아침이슬,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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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라는 존재의 한계와 가능성,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빛과 그림자를 차근차근 돌아보게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두 개의 ‘나’ 사이를 오간다. 글을 쓰는 ‘나’와, 그 ‘나’가 글에서 취하는 실존을 규정하는 현실의 ‘나’다. 그들은 일치하면서 화해하거나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을 앞세우며 불화한다. 글을 쓸 때 이들 두 개의 ‘나’가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윤리적으로 타당한 글이 나올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변혁적 지식인으로서 교사가 글을 쓸 때 잊지 말아야 하는 원칙 중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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