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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07. 2019

민주주의 공동체는 어떻게 전체주의 권력이 되는가

하라 다케시의《다키야마 코뮌 1974》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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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키야마 코뮌 1974》를 우연히 만났다.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교육 정치’, ‘교육 권력’ 등의 검색어를 입력한 뒤 화면에 뜬 여러 책들을 살피다 이 책을 발견했다. 내 눈길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책의 부제였다.


“민주적 집단 교육 공동체는 어떻게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이 됐나.”


나는 이 부제를 보면서 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학교 내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일부의 폐쇄적인 (혁신)학교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우리 학교”를 강조하고, “우리(학교)만의 혁신 교육”을 소리 높여 외친다.


2


근현대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자인 하라 다케시 일본 방송대학교 교수는 1969년 입학부터 1975년 졸업까지 자신이 다닌 히가시구루메 시립 제7초등학교에서 겪은 교육 경험을 이 책에 낱낱이 기술했다. 그가 경험한 교육은 권력에 대항하며 미래 주권자가 될 아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앞에 내세운 교육은 그 이면에서 집단적인 권위주의와 억압으로 인해 개인을 고립시키고 소외하는 등의 모순을 드러냈다.


“선의와 이상으로 가득한 이 시도가 아이들의 사고와 신체를 관리하는 억압으로 바뀌고 마는 과정을 살피면서 혁신적인 이상주의의 기만성도 담담히 그린다.” (342쪽, ‘옮긴이의 말’에서)


3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의 협력적인 태도나 역량을 길러 준다는 명목으로 교사가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모둠별 수업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수십 명이 모인 교실에는 모둠 활동에 저항감이나 거부감을 갖는 학생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며, 나는 이때 교사가 취해야 할 태도가 이들을 강제로 모둠 활동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설득하여 동의를 구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글쓴이 하라는 히가시구루메 시립 제7초등학교에서 혁신적인 교사들이 주도한 ‘수도 방식’의 수학 수업과 경쟁적인 조별 활동에 초점을 맞춘 ‘학급 집단 만들기’를 경험하면서 큰 상처를 받다. 집단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조별 수업이나 모두가 예외 없이 참여해야 하는 자치활동에서 ‘나’가 자리잡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


하라가 다닌 학교의 혁신적인 교사들은 입시 반대를 외치고 기미 가요 제창을 거부하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민주적 학교를 만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린 하라는 집단이 주는 압박감과 소외감에 시달렸다. 하라가 기억하는 절정의 소외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떠난 수학여행에서 겪은 일이었다.


하라는 캔들 파이어로 연출하는 집단적 일체감 행사(캠프 파이어 같은 행사)를 싫어했다. 집단의 위계 서열에 따라 극히 일부만 촛불을 붙이고 들 수 있는 여느 캔들 파이어와 달리, 수학여행 때 실시한 캔들 파이어 행사는 학생과 교사와 교장 등 참석자 모두 철저한 평등을 추구한 형태로 진행된 ‘혁신적인’ 방식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이건 캔들 파이어가 아니야. 사실상 수학여행을 지휘한 지도자 카타야마 선생님 한 사람의 독무대야. 민주주의 집단이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촛불을 들고서 평등해야 하는데, 충성도에 따라 서열을 두는 짓은 모순이야.’ 아무런 충성도 하지 않은 내가 그저 조장이라는 이유로 넷째 순서로 지목돼 칭찬받는 일이 이해가 안 됐다. 충성도를 따져 지목을 받는다면 나는 마지막 순서여야 했다.” (269쪽)


그 뒤 대표어린이위원회라는 지도 집단에서 나오게 된 하라는 음악실로 소환되어 대표어린이위원회 간부들 앞에서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다. 하라는 이를 거부하고 음악실을 뛰쳐나왔다.


5


나는 책을 손에 쥐자마자 곧장 독파했다. 무엇보다 서술 기법으로서의 묘사와 기술이 탁월했다. 글쓴이가 서술해 놓은 문장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군더더기 하나 없어서 장면 하나하나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라는 이 책을 내고 2008년 고단샤 논픽션상을 받았다.


사소하고 평이해 보이는 학교 문화 속에 숨은 이면의 의미를 찬찬히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점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학교 자치나 학생 자치를 학교 민주주의의 중요한 지표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학교 민주주의의 절대적인 보증 수표가 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자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집단의 이름으로 강제되는 억압이나 명령이 되어 학교와 교실을 전체주의의 망령이 떠도는 장소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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