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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11. 2019

그들이 알파벳 ‘E’ 자를 쓰는 방법

크리스토퍼 헤이즈의 《똑똑함의 숭배》(2017, 갈라파고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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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이 공동체에 가져다 주는 득과 실 중 더 큰 것은 무엇일까. ‘똑똑함’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식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말해 보면 득보다 실이 더 클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는 똑똑한 사람을 일류 대학을 졸업해 ‘사(士)’자 들어가는 전문 직업을 갖고 살거나,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쯤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사리’와 ‘총명’(‘똑똑하다’라는 형용사는 “사리에 밝고 총명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이 우리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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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평론가이자 언론인인 크리스토퍼 헤이즈가 쓴 《똑똑함의 숭배》를 읽다 보면, 똑똑한 사람들을 향한 내 삐딱한 시선이 괴팍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도 알고 보니 벌거벗은 임금님 같은 존재였다. 하버드 출신은 썩어도 준치이니 우대해야 한다. 책임은 힘없는 사람이 지고 용서는 힘 있는 사람이 받는 법이다. 상위 1퍼센트인 우리가 받는 최고의 대우와 특혜는 당연하다. 글쓴이는 책 전반에 걸쳐 이들 문제를 하나하나 논박한다.


글쓴이가 이 책에서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똑똑함 그 자체가 아니라 똑똑함‘만’으로 무장한 엘리트주의다. 실상 책의 부제(“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속에 이 책의 전체 주제가 들어 있는 셈이다. 똑똑함은 능력 있는 엘리트의 필수 덕목이다. 이외에 지혜, 판단력, 공감능력, 윤리적인 엄격함 들이 똑같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덕목들이 대접을 받는 일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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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에게 필요한 다양한 덕목은 부족하거나 거의 없고 두뇌만 비상한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 글쓴이는 그 사례로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내린 가장 시대착오적이고 불법적인 결정의 배후를 지배했던, 부통령 딕 체니의 법률고문이었다가 비서실장이 된 데이비드 에딩턴을 든다.


‘체니의 체니’, ‘숨은 실세’ 등으로 불린 에딩턴은 언론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자”로 묘사되었다. 2000년대 초반 테러와의 전쟁 기간 취해진 무기한 감금과 고문 허용, 민간인 보호에 관한 1949년 제네바 협정 위반, 인신보호청원 거부 등의 반인권적이고 초법적인 조치 모두가 에딩턴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에딩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예리함과, 이념에 집중된 비상한 두뇌였다고 한다. 그는 기가 막힐 정도로 똑똑하고, 언변이 뛰어났으며, 복잡한 정보를 흡수하는 능력이 전설적이었다. 동료들은 그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똑똑하고, 번뜩이는 기지도 천재급”이라며 극찬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천재적인 똑똑함을 무기 삼아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자신의 의견을 저돌적으로 관철시킨 독재자였다. 글쓴이는 에디턴의 사례를 들어 부시 행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이라크 전쟁 이면에 ‘똑똑함에 대한 숭배’가 자리잡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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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론’은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람들은 복종하는 데 적합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령하는 데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소수 독재의 철칙’은 민주주의가 널리 퍼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대목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연구소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2010년 기준)에 따르면 전 세계 170여개국 중 50퍼센트 넘는 국가에서 독재 정치 체제가 운영되고 있다.


저명한 엘리트 연구자인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파워 엘리트’가 “국가적 행사와 관련된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르면 엘리트는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 다수 대중에게 없는 권력, 그들만의 상호 연결성(네트워크)으로 특성화할 수 있겠다. 글쓴이 역시 엘리트가 누리는 주요 권력의 원천으로 돈, 플랫폼, 네트워크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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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모든 요인들은 상대적이다. 10억 원을 가진 자산가는 1억 원을 가진 사람에 비해 부자임에 분명해 보이지만, 100억 원을 가진 사람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빈곤한다고 생각한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공식 초대를 받아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스위스로 날아간 뒤 특급호텔에 공짜로 묵은 파워 엘리트는 전용 여객기를 타고 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하는 세계적인 부호를 보면서 자신의 사회적 플랫폼과 네트워크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여기에는 불평등에 관한 심리학적 설명 기제인 ‘프랙털형 불평등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프랙털은 처음의 한 형태가 수학적 공식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계속 반복되는 멋진 형태로, 촉수 모양의 테두리가 나선형으로 계속되어 환각에 사로잡히는 느낌을 준다. (중략) 프랙털 형태의 빈부격차도 이와 똑같다. 거대한 불평등이 분석의 각 단계에서 똑같은 구조로 되풀이되는 것이다. 소득의 분포를 넓은 범위에서 보면, 상위 1퍼센트와 하위 99퍼센트의 격차는 상위 0.01퍼센트와 0.99퍼센트의 격차와 비슷하다. (242쪽)


이와 같은 프랙털형 불평등 구조 아래서 능력주의를 빙자한 선별과 배제, 엘리트 계층 내부의 핵심그룹화 현상이 나타난다. 글쓴이에 따르면 능력주의 사회는 ‘최고의 적임자’를 계속 더 좁아지는 핵심 그룹으로 모으기 위해서뿐 아니라 성취에 대한 지치지 않는 욕구, 바늘구멍 같은 중심에 도달하려는 욕구를 부추기기 위해서 상당히 의도적으로 설계된 사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가 향하는 곳은 사람들을 “도덕이 썩어빠진 세계로 끊임없이 초대하는 사회”(C. W. 루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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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극소수가 사회적 부를 독점할수록 권력은 공감 능력을 잃은 독재자의 얼굴을 띤다. 권력 자체의 속성이 그렇다. 여러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권력이 시야를 좁게 만들고, 사람으로 하여금 낮은 공감 능력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높은 권력과 낮은 권력을 가진 두 집단을 대상으로 각자의 이마에 검은색 메직펜으로 최대한 빨리 알파벳 ‘E’를 쓰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높은 권력이 주어진 집단은 대부분 그들이 읽기 편한 방향으로(즉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좌우가 바뀐 방향으로) 글자를 쓰는 반면 낮은 권력이 주어진 집단은 상대편이 읽기 쉽도록 좌우를 바꾸어 쓴다. 권력의 다과 여부에 따라 세상이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의 기준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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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래시는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에 대한 희롱”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글쓴이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인종, 성, 성적 취향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철폐한다는 약속이지만 인간은 능력과 진취성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계급을 인정하는 신념이다. 그래서 이상적인 능력주의 모델에서는 똑똑한 사람과 둔한 사람의 차이를 극단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


이러한 사회 정신은 ‘재능의 귀족’을 찬양한다. 이는 민주주의적 서약과 충돌한다. 래시의 경고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2010년대 이후로 공정성 담론이 우리 사회를 거세게 휩쓸고 있다. 똑똑하여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인증하는 유일무이한 수단이 마치 시험인 것처럼 온 사회가 ‘시험국민’[이경숙(2017), 《시험국민의 탄생》, 푸른역사.]으로 넘쳐난다. 우리 사회는 래시가 경고하는 사회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 크리스토퍼 헤이즈(2017), 《똑똑함의 숭배: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푸른역사. 1,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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