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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6. 2019

책 읽기의 어려움, 공부하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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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군산중등지회 학술 연구 모임 ‘아카데메이아’에서 이번 달부터 로버트 스탠리 피터스가 쓴 《윤리학과 교육》을 함께 읽고 공부하기로 했다. 나는 몇 년 전 어디에선가 이 책이 “교육학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한 촌평을 본 적이 있다. 적지 않은 과장이 섞인 표현처럼 보였지만 그 두 마디 말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얼마 뒤 책을 구해 시시때때로 읽었다. 차분하고 담백한 문장들, 그런 문장들 사이에 흐르는 분명한 논리의 흐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여느 유수한 교육철학 저작들에서 (기대했던 바와 달리) 자주 보이곤 했던 난삽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혁명’과 같은 경험까지는 아니어도, 교육학(과 관련된 저작과 논의들)을 향한 생각에 상당한 변화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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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메이아에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을 읽으면서 느낀 어려움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외국 번역서 특유의 어지러운 문체를 받아들여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듀이의 문장 작법 자체가 그런 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겠으나, 그런 문장을 우리말로 요령 있게 다듬어 내야 하는 번역자의 모어에 대한 언어 감각 문제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두 번째는 전문적인 학술 저작들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보이는 내용을 길고 복잡하게 전개하는 서술 방식과 관련된다. ‘교육’, ‘성장’, ‘경험’, ‘환경’, ‘활동’ 같은 평이한 일상어들을 교육철학적 차원에서 풀어 가자면 불가피하게 뜬구름 잡는 식의 논증을 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더라도 그 과정을 좀 더 쉽고 명료하게 이끌어 갈 수는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컸다. 우리는 독회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이런 점들을 지적하면서 앞으로는 이렇게 재미 없고 어려운 책을 다시 보지 않을 듯이 성토하곤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교육》을 마무리하고 그다음 함께 읽을 책을 정하면서 예상치 못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가볍게(?) 훑어 볼 수 있는 책들은 각자 집에서 읽도록 하고, 학문적으로 권위가 있는 묵직한 책들을, 비록 그것들이 재미나 가독성의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보자는 데 수월하게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선생님들이 추천한 책이 장 자크 루소의 《에밀》, 가야트리 스피박의 《교육 기계 안의 바깥에서: 초국가적 문화연구와 탈식민 교육》 등이었다. 우리는 잠깐 동안의 논의를 거쳐 《윤리학과 교육》을 함께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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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교사들 자신의 게으르고 안일한 태도 탓이 없지 않겠지만, 공부하며 깊이 사색하는 일을 어렵게 하는 반지성적인 교육 (행정) 시스템이나 학교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책을 전혀 읽지 않거나, 함께 적당히 책 읽는 시늉을 하며 공부하는 척하기만 해도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평가 받는 이즈음 학교 안팎의 풍토 속에서 정색하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 학교교육이 상급학교 진학 여하에 따라 평가 받는 상황 속에서 좋은 책을 엄선해 읽으면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교육 생태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우선 교사가 자신의 지성을 날카롭게 하고 빛나는 통찰을 성취하는 일을 가로막을 것이다. 가장 크게는 결국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풍요로운 지적 경험을 하는 일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교사들로 하여금 책을 깊이 있게 읽지 못하게 하는/않게 하는 교무실 문화, 공부하는 일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학교를 반지성의 공간으로 만드는 핵심 주범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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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터스가 쓴 《윤리학과 교육》이 서구 정통의 보수 교육학을 대표하는 저작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보수적인 교육이 고리타분한 도덕 교육이나 엄격한 규율에 따른 훈육 일변도의 생활교육 정도로 이해되는 게 작금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실상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의 근원적인 측면을 명쾌한 논리로 개진한 피터스의 교육철학이 우리 모두에게 교육에 대한 시야의 개변과 확장을 경험하게 하는 들무새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 책을 함께 읽는 시간이 우리에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의 즐거움을 안겨 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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