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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30. 2019

정치적 금치산이 교사의 운명인가

교원의 정치 기본권과 관련한 1128 헌재 위헌심판청구소송 결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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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학교는 정치적 진공의 영역이다. 교사의 정치적 금치산 역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족쇄다.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이어 거의 20년만인 지난 2019년 11월 28일에 나온 교원의 정치 기본권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결과가 그 생생한 방증이다. 이에 따르면 학교 교사는 교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정치적 기본권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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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징검다리교육공동체 등 몇몇 교육시민사회운동단체가, 교원이 공직선거에 출마하려면 90일 전까지 직을 사퇴해야 하고, 교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 53조 제1항 제1호·제7호, 제60조 제1항 제4호·제5호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7조 제1항 등에 대해 헌법재판소(헌재)에 낸 헌법소원심판청구 소송에서 ‘기각’ 결정을 냈다. 헌재가 이들 조항들이 ‘합헌’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90일 전 사퇴 문제: “학교가 정치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학생의 수학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교원의 직무 전념 의무를 담보하는 것이다. 학교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므로 입후보시 일정 기간 전까지 교직을 그만두도록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입후보를 전제로 한 무급휴가나 일시 휴직을 허용할 경우 교육의 연속성이 저해되고 학생들이 불안정한 교육환경에 방치될 우려가 있다.”


(나) 교원의 선거운동 금지 문제: “교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개별적 행위를 금지하는 방식은 선거 관련 기관의 유권해석이나 법원의 판단을 구해야 하므로 금지조항으로서 실효성 및 규범력이 약화 될 우려가 있다. 교육공무원의 활동은 근무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의 인격권 및 기본생활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 역시 선거의 과열과 혼탁에 따른 교원 사회의 반복과 갈등, 교수 학습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점을 볼 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대학교원과 초중등학교 교원의 직무와 학생에 대한 영향력이 다르므로 평등권 침해가 아니다.”


(다) 대학 교원과의 형평성 문제: “대학교수는 학생을 교육하기는 하나 그 주된 직무는 연구이며 학문의 자유로운 주체로서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학생의 연령 및 교육정도 등을 고려할 때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력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초중등학교 교원과 달리 대학교원에게 그 직을 보유한 채 공직선거 등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이를 불합리한 차별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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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학교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라는 논리는 현실에서 성립할 수 없다. 헌법재판관들이 이 문장을 기입하면서 떠올린 것은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관련 조항일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육 시스템이 외부 정치 권력(자)이나 힘의 시녀(노예)여서는 안 되겠다는 점일 것이다.


헌재 판사들은 이를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학교 제도”라고 자의적으로 확대하여 해석했다. 헌재 판사들에게 묻고 싶다. 현대 공교육 시스템에서 그런 학교 제도가 가능한가.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들이 교사들에게 정당 가입, 직무 시간 외 선거 운동, 자유로운 입후보 등 정치적인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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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교육공무원의 활동은 근무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의 인격권 및 기본생활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라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헌재 판사들이 이 논리를 시민들에게 내세워 그들을 설득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① 근무시간 외 교사가 하는 정치적인 활동이 학생 인격권이나 기본 생활습관 형성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무엇을 근거로 알 수 있는가.
② 위 ①을 인정하더라도 근무 시간 외 교사가 행하는 정치적인 활동은, 그가 민주주의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공적인 사안에 무관심하지 않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려 한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오히려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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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대학 교원과 초중등 교원은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의 연령 및 교육정도 등을 고려할 때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력에도 차이가 있다.”라는 논리는 모욕적이다. 초중등 교원과 초중등학생 전체를 정치적 감각과 판단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거나 행사할 수 없는 정치적 금치산자 정도로 보는 시대착오적인 시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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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대학교수는 학생을 교육하기는 하나 그 주된 직무는 연구이므로, 정치적 기본권 측면에서 초중등교원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라는 논리에는 천박한 교육연구관이 담겨 있다. 교육과 연구를 기계적으로 이분화함으로써 교육은 무엇인가 수준이 낮은 것으로, 연구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 판사들은 교육을 연구 활동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지식 전달 정도로 간주하는 것 같다. 또한 교사가 무엇인가를 전달, 주입하면 학생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화 정도로 이해하는 듯하다.


헌재 판사들은 교육 없는 연구와 연구 없는 교육이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과 연구를 상호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전제한 위와 같은 논리는 억지 춘향식 궤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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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재 판사들에게 독일 제16대 연방의회기(2005~2009) 재적의원 614명 중 81명(13.2퍼센트)이 교사 출신으로서, 법조인(143명, 23,3퍼센트) 출신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묻는다. 독일 교사와 학생들이 우리나라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정치적 디엔에이 세포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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