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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여 업무 메신저 창을 열어 보니 교육지원청 학교폭력(학폭) 담당자가 보낸 쪽지가 와 있었다. “인성인권(학교폭력) 업무담당자 힐링 연수” 소개와 신청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힐링 연수에 참가하면, “1. 중창단의 감미로운 노래”를 듣고,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2. 체험활동을 하면서 경찰들과 분임 토의”를 한다고 한다. “3. 소정의 선물”도 있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러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 단위에서 인성인권, 특히 학폭 관련 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를 진행한다. 이들 연수 앞에는 대개 ‘힐링’이 붙는다. 답사나 여행 프로그램 방식으로 구체적인 일정이 짜이거나, 가벼운 양념처럼 음악 연주가 곁들여지기도 하고, 무겁지 않은 좌담회를 실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힐링 연수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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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인권 업무, 지난날 식으로 말하면 학생부 업무는 교사들 사이에서 제일 기피 업무로 인식된다. 학교 내외 학생 간 갈등에서 불거지는 일들을 학폭 사안으로 규정하면서 엄격한 법률적 시스템에 따라 처리하게 함으로써 담당 교사의 업무 피로도가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교사-학생 간, 교사-학부모 간 갈등 사안 역시 교원지위법에 근거하여 학폭 사안과 거의 유사하게 처리되면서 기피 업무 리스트의 앞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학폭이나 교권침해 관련 사안들 중에는 폭발성이 강해 학교 전체를 초토화하거나, 업무 담당 교사를 병원에 실려가게 하기도 한다. 사안 신고 접수 초기 단계부터 변호사가 개입하여 학교와 교사를 ‘멘붕’에 빠뜨리기도 하고, 학교와 교사를 민형사 소송으로 끌어들여 교육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고경력 중견 교사나 저경력 신규 교사를 막론하고 교사들이 인성인권 관련 업무를 기피하는 데는 나름대로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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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들 업무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위로하고, 서로 애환(?)을 나누게 하는 힐링 연수의 기획 취지를 십분 이해하는 한편으로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학폭 업무‘만’ 힐링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기피 업무 일순위에 놓이는 학폭 업무의 이미지를 더 악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들이 학폭 업무를 심상한 업무처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번갈아 하며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그런 일처럼 말이다. 실상 학폭 업무야말로 학교 안팎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인간관계의 실상과 그 배경으로서 사회 구조의 변천상을 알게 해 주는 교육 텍스트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각종 법률과 지침에 따라 규정된 학폭 업무의 틀과 절차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사안을 처리할 때 관련 학생 상담과 교육보다 기안이나 서류 작성 등 행정 절차에 더 매달리게 되는 문제가 크다.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에서 해야 할 일은 그런 구조로 바꾸기 위한 행정적 노력이나 실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