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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18. 2020

학교교육은 누구의 것인가

제19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참교육실천대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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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견해에 따르면 국가와 교원의 관계에서 국가의 교육권이 교원의 교육권보다 우선한다. 교원의 교육권은 국가의 위임에 의한 것이다. 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호남권 3개 광역교육청이 공동 주관한 2020 제19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전국참실대회)의 학교학 분과 마당에서 윤상혁 국가교육회의 장학사의 발제 중 이런 내용을 들으면서 문득 배이상헌 교사 사태(라고 쓰고, 배이상헌 교사의 교육권 탄압 사태라고 읽고 이해한다.)가 한 편의 기이한 부조리극처럼 다가왔다.


배이상헌 선생님은 중학교 도덕과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하다가 민원 대상자가 되어 수업배제와 수사기관 의뢰와 직위해제를 당했다. 도덕과 교육과정을 마련한 주체는 국가다. 배이상헌 선생님이 실시한 수업은, 국가가 자신이 만든 도덕과교육과정에 의거해 교사에게 위임한 교육권 구조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 교사가 지금 법률상 ‘아동학대’ 혐의를 받아 경찰과 검찰 수사 서류에 올라 있고, 직위해제를 당했다. 정작 국가가 ‘아동학대’ 혐의를 받아 경찰과 수사 서류에 올라가고, 직위해제를 당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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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상헌 교사 사태의 시발점에 ‘민원’이 있다. 민원은 학교 같은 공공기관에 필요한 제도다. 누구나 제기할 수 있으며, 그 처리 과정에서 민원인의 의견이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민원인의 요구와 바람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민원의 ‘대상’이 된 교사, 공무원을 너무나 손쉽게 재단하고 판단한다. 민원을 받을 만한 어떤 것이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학교 민원은 자주 이들 민원인과 민원 대상자 간의 ‘개싸움’으로 비화할 때가 많다. ‘나는 당신의 수업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수업 내용은 문제가 있다.’ 민원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 교사가 감정과 의식의 평형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뭔데 내게 그런 소리를 하는가. 교육은 전문가인 내가 판단해야 하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의 지리멸렬한 민원 처리 과정은 우리에게 거의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진다. 학교교육은 교사의 것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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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국참실대회의 공식 구호는 “삶을 위한 교육, 더불어 행복한 교육시대를 만들자!”였다. 이 멋진 구호가 단지 언어적 수사로만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학교는 학교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갖가지 민원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학교 내 교육활동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나 의견 제시부터 다짜고짜 욕설부터 내지르고 보는 단순 항의성 전화까지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와 교사를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옥죄고 있다.


나는 교육이 가능한 학교, 삶을 위하고 더불어 행복한 교육이 학교 안팎의 교육주체들이 각자의 관점과 의견을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틀 안에서 개진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행정기관에서 운용하는 민원 제도 또한 넓게 보면 그러한 취지에서 마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학교는 민원을 공공적이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구나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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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국참실대회에서 배이상헌 교사 사태가 디딤돌이 되어 마련된 학교학 분과에서는 도덕교육 분과와 공동으로 학교 민원 처리 기구 설립과 운용 시스템 마련을 위한 전교조 정책사업을 전교조 본부에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12시간의 토론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 중 교사 교육권의 이론적 역사적 법적 근거,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학교 의사결정의 철학과 학교자치의 정신에 터한 학교 민원 처리 시스템의 필요성, 폭주하는 민원과 점차 확대되는 학교자치에 역행하는 민원 처리과정에 관한 갖가지 파행적 사례 들의 문제를 종합하고, 그 결과를 기록으로만 남겨 묵혀 두지 말고 실천적인 방향을 모색하여 학교 현장에서 실행하는 데 들무새로 써 보자는 학교학 분과 참여 교사들의 의견과 요구에 따른 결과였다.


우리는 이 정책사업 제안서를 공동으로 작성해 다음주 월요일 전교조 본부에 전달하려고 한다. 또 민원 처리의 전후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교육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안들을 고민해 각자의 학교 현장에서 실행하기로 했다. 나는 올해 우리 학교 첫 번째 교무회의가 열리기 전에 학교 내 민원 처리 기구 마련에 관한 안건으로 제안서를 작성해 교무회의에 제출하려고 한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교사회와 교무회의 토론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시스템을 설립할 때까지 노력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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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나는 학교교육의 주인이 교사여야 한다고 믿는다! 학생이 없으면 교사 역시 조용히 사라지면 된다. 그러니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있는 법이라며 법석을 떨지 않으셔도 된다.


교육에는 모종의 갑을관계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교사의 ‘지식권력’(이때 ‘지식’은 ‘지혜’까지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것으로 보자.)이 넓은 의미의 스쿨미투의 빌미처럼 다가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자기 자신이 지식권력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교육자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요컨대 교육은 본질적으로 피교육자의 ‘모름’을 전제로 무엇인가를 먼저 안 교육자가 그렇게 알게 된 결과물을 피교육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그의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는 일이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가 ‘갑을’의 차원에 놓이는 배경이다.


나는 여기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갑을 관계라는 표현은 수사적 언명이 아니라 실제 온전한 의미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한 최본질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는 이러한 갑을관계의 강도가 높을수록 최소한의 교육활동만으로도 그 교육활동의 목표나 성과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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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하이트는 최근작 《나쁜 교육》(2019년 12월)에서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대단한 비진실’ 3가지 중 첫 번째로 ‘유약함의 비진실’을 제시했다.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는 말은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


진실은 반대다. 고된 일은 우리를 강해지게 한다. 그래서 나는 교육이 본질적으로 불편한 것이고, 불편한 것이어야 한다고 언명한다. 감정적으로 편안하거나 즐겁거나 달콤하기만 한 교육은 유사교육이거나 비교육이거나 반교육이다. 나는 불편함이, 나아가 불편함 속에서 교육을 진실로 교육이게끔 만든다고 믿는다.


나는 최근 몇 년 새 크게 불거진 학교 내 악성 민원 문제들이 교육의 불편함을 나쁨으로 간주하는 기괴한 사회 문화적 풍토 속에서 증식한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함을 전제하되,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민원 처리 과정이 합리적인 의사소통과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런 점을 고민했고, 앞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움직여 나가기로 함께 약속했다. 12시간 동안 이어진 학교학 분과에서 거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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