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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운이나 우연이나 요행수를 대단히 좋아하면서도(로또 1등 당첨점에서 로또 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과 연관되는 문제의 경우에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현상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들은 운이나 우연이나 요행수가 실력이나 능력과는 결코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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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전남 순천시 순천대학교에서 열린 제19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전국참실) 첫날 두 번째 주제 강연 마당에서 김상봉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에게 ‘사회적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공교육 철학에 확고하게 기반한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 거점 국립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 체제 개혁, 수능 자격고사화, 대입 추첨 입학제 들이 인상적으로 들렸다. 추상적인 담론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함께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 말미에 한 참석자가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의 추천 입학제에 따르면 동일 대학에 원서를 접수한 동점 합격자들을 추첨으로 최종 선발해야 하는데, 추첨에서 탈락한 지원자가 해당 학교에서 꼭 배워야겠다고 주장할 경우에 추첨제를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의 질문이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학생에게 왜 꼭 그 학교에서 배우려고 하느냐고 되물어야 합니다.”
나는 질문을 던진 참석자의 정확한 의도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추첨’이라는 말을 둘러싼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관점에 기대 주관적으로 해석해 보면 추첨제의 불합리성이나 불공정성을 환기하려고 한 질문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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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입시와 추첨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것을 극히 꺼린다. 고도로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할 입시 제도에 운에 기댄 추첨 방식을 도입해 활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추첨제는 고대부터 민주적 제도를 운영할 때 널리 쓰인 방식이었고, 현대에도 일정 조건을 충족한 의대 지원 학생들을 추첨으로 뽑는 덴마크 대입 제도 사례가 있다.
추첨제는 공정하지 못한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운에 따라 진행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우연이고 운이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태어난 환경은 물론이고,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삶의 조건들 중 많은 것들이 온전히 내 자의에 따라 선택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운이나 우연과 무관한 공간에서 작동하는 것 같은 학벌 시스템에서조차 운과 우연의 힘이 강력하게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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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공할 실력주의 사회 대한민국이 무서운가. 그렇다면 나는 운이나 우연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이 온전한 ‘실력’(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말이다.)에 따라 설계되고 실행된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는 실력주의의 적자들이 아니다. 실력은, 아니 실력조차 운이다. 실력이 태고난 재능(운이다.), 노력(운적 측면이 강하다. 노력하는 태도조차 타고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고, 주변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노력의 강도가 달라진다.), 환경(운이다.)의 상호 작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말이다.
나는 수년 전 권세 있는 집안 출신 정모 씨가 한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생생하고 극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돈’이 들어갈 자리에 또 다른 실력 관여 요소들을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부모, 집안, 마을, 친구, 사회, 국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모든 것이 운의 요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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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눈을 홉뜨는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실력이 운과 우연에 좌우될 수 있다면 누가 노력하겠는가. 글쎄, 우리의 실력이 운과 우연에 좌우된다는 생각을 갖는다고 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거나,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우리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세상에서 산다. 내가 이 세상의 많은 일이 운과 우연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노력을 하지 말자거나 게으름뱅이처럼 살자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실력주의의 전사가 되어 치뜬 두 눈을 아래로 내려 놓았으면 싶어서다. 운과 우연을 미워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