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Mar 11. 2020

“영향력의 본질은 삼가는 데 있다”

1


책을 몇 권 내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매체에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공개 강의를 종종 하면서 나를 평하는 이런저런 말듣거나 글을 본다. 극찬이나 호평에서 조롱이나 악평까지, 비난에 가까운 비판에서 애정 어린 조언까지 종류도 내용도 가지가지다.


책이나 글을 쓰고, 여러 사람을 상대로 강의나 강연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읽고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뜻이나 의도가 달리 있다며 아무리 우겨도, 글쓴이나 강연자는 책을 내고 글 쓰는 일이 자신을 세평의 무대로 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갖가지 색깔의 평가를 듣는 일은 자연스럽다.


2


며칠 전이었다. 오랜만에 페친 김동현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영향력’에 관해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교사 집단 내부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선생님들의 태도(?)랄까 자세(?) 같은 것을 언급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우리가 좋거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책을 내거나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까. 다소 조심스럽게 내놓는 전제지만, 어떤 책과 글은 독자를 오도하거나 오염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책을 내고 글을 쓰고 대중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 사회적 행위다. 나는 그에 걸맞게 일정한 책임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있을까.


짧은 순간 그렇게 자문하고 보니 고민과 걱정이 앞섰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글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 받아들여지게 하려고 자극적이고 날선 언어를 쏟아낸 것 같았다. 아마 나는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말과 글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모든 강연자와 저술가들의 꿈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그렇게 뜨겁게 꾸는 꿈 때문에 현실에서 악몽을 만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지나친 꿈을 삼가고 조심할 일이다.


3


권력자,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이나 영향력이 지금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겸손하게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을 만나는 교육자라면 더더욱. 그는 아이에게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중 하나다. 책을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이 있어 길지만 인용해 본다.


“영향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섬세해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행사하거나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현재의 과도한 요구는 미래의 가능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또한 영향력은 사적인 전화나 귀에 들릴 정도의 말 등을 통해 조용히 행사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너무 공공연하고 무겁게 다루어진다면 양측 모두에게서 잠재력을 잃기 시작한다. 교장이 교직원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교직원들이 교장에게 실제 영향을 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권력을 갖는 것과 권력에 대한 접근권을 갖는 것은 종류가 다르다. 교직원회의 어느 구성원이 누군가가 교장과의 관계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위태로워지거나 직원들과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직원회의 또 다른 사람이 교장 사람임이 확실하다면, 교직원들의 의견을 측정하는 척도로서 그 사람이 갖는 가치는 무력화될 수 있다. 영향력의 본질은 삼가는 데 있다.”

- 스티븐 볼(1987, 2012), 《학교의 미시정치학》, 루트리지 출판사, 133~134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