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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09. 2020

사랑이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습니다

영화 <두 교황>(2019)을 보고

1


<두 교황>을 보았다. 영화는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어떤 자극적인 화면 구성이나 대화를 보여주지 않고도 나를 화면에 몰입시켰다.


2


무엇보다 깊이 음미하게 하는 말들이 많다. 나는 이 말들을 기록하기 위해 일시 정지 버튼을 기꺼이 여러 번 눌렀다.


“어떠한 여정도, 아무리 긴 여정이라고 해도 어디에선가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영광스러운 여정이라고 해도 실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자비의 얼굴입니다. 죄가 클수록 더 따뜻하게 환영해 주어야 합니다.”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라.”


3


선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되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보수주의와 절대주의를 대변한다. 극도로 금욕하고 절제하는 삶을 통해 신앙의 전통과 경건함을 구현하려 한다. 후임 교황 프란치스코에 즉위하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진보주의와 상대주의를 대변한다. 그는 거리의 민중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대화한다.


<두 교황>은 주인공인 ‘두 교황’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대립을 갈등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들은 우리 인간 사회의 영원한 맞수, 또는 쌍두마차다. 영화가 주인공들 간의 대화가 태반을 차지하면서 평면적으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 이와 관련되는 것 같다.


4


영화 속 카메라는 이들을 두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에 대해 어떤 암시도 주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우리 인간 사회의 오래된 진실을 보여 주려는 감독의 의도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절대주의와 상대주의가 공존하는 공동체라야 평화가 찾아온다.


영화 종반의 어느 대목에서 호르헤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세칙을 상기시킨다.


“진실은 중요하지만 사랑이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 안의 사랑’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세칙이 이 세상의 절대주의자들과 상대주의자들에게 건네는 감독의 핵심 메시지라고 봐도 좋겠다.


5


<두 교황>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강박적으로 얽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영화다. 정치에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 숙명처럼 새겨져 있지만, 나는 그것이 제로섬 게임마냥 이어져서는 어떤 희망이나 지속 가능성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두 교황>은 많은 사람이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를 외치는 우리 시대를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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