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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7년경 신생 교원노동조합의 태동을 지켜보면서 교육 노동 분야에서 펼쳐질 미래 상황이 우려되었다. 노동(자) 적대적인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노동 관련 제도와 정책의 반노동적 구도 등으로 인해 교원노조 당사자들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노-노 갈등과 대립, 불합리한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시 쓴 글 몇 편에서 한시적임을 전제로 이른바 ‘전교조 빅텐트론’을 주장했다. 제반 여건상 노사 간 교섭 진행 과정에서 힘의 우열 구도를 좌우하는 정치적 주도권이 일방적으로 사용자(정부, 지자체) 측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고려할 때, 교육노동자들의 입장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힘이나 역량을 최대 교원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몰아 줌으로써 전체 교사 집단과 정부 간 힘의 불균형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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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다. 나는 교사들의 교원노조 가입률이 우리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북유럽 일부 국가들의 교육 생태계에서 ‘전교조 빅텐트론’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관찰한다. 강력하고 단일한 대오의 교원노조 덕분에 대정부 협상에서 정부와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는 노르웨이, 핀란드 같은 나라가 구체적인 사례다.
노르웨이 교사들의 약 90퍼센트는 자국 최대 노조인 노르웨이 교육노조(Union of Education Norway)에 가입해 있다. 학교 행정직원들도 노르웨이 교육노조에 함께 가입할 수 있다. 교직의 사회적인 위상 승격이나 교육 시스템 개선, 수업 질 향상을 위한 교원정책 도입 배경에 강력한 단일 교육노조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
핀란드에는 95퍼센트 이상의 교사가 가입해 있는 핀란드 교육노조(Trade Union of Education in Finland)가 있다. 핀란드에서 교직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최고 전문가 직군으로 간주되는데, 교사 집단을 그렇게 만든 핵심 요인이 핀란드 교육노조였다. 핀란드 교육노조는 핀란드 변호사협회, 핀란드 기술사노조, 핀란드 의사협회 등 전문직 회원 조직들이 공동으로 속해 있는 학술 직종 노조연합 ‘아카바(Akava)’의 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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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노조의 존재 여부가 교육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1989년 창립 이래 꾸준히 유지돼 온, 전체 교사 대비 노조 가입률 15퍼센트 내외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나 학교문화를 바꾸고 개선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전교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나는 노동조합원 교사가 한 명이라도 있는 학교가 모두 민주적 교장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이른바 제왕적 교장이 전제하며 교사와 학생들에게 군림하는 학교는 노동조합원 교사가 한 명도 없는 학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주에 따라 상이한 교원노조 시스템을 운용하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교사들의 노조 가입을 불법화해 온 미시시피, 플로리다, 애리조나 주 등은 대체로 빈곤율이 매우 높고, 소속 학구의 재정 형편이 열악하며, 학생들의 성취도 또한 최저 수준을 보인다. 미시시피 소재 학교들은 학생 학생 1인당 교육지원비 수준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다.
미국의 학생 빈곤율은 세계 주요국들 중 꼴찌 바로 앞이며, 그런 미국에서도 아동 빈곤율이 가장 높은 주가 미시시피다. 유엔아동기금이 정의한 국제 빈곤선 이하에 해당하는 미시시피 주 아동은 전체의 35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메사추세츠 주는 전체적으로 미시시피와 정반대의 현황을 보인다고 한다. 메사추세츠 주에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교원노조가 활동해 왔으며, 공교육 제도의 질과 수준 역시 미국 전체에서 상위권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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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9월 3일) 대법원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판결을 내렸다. 7년 전 해직자 9명을 조합에서 배제하라는 정부(고용노동부) 명령을 거부하고 2507일 동안 학교와 길거리에서 법외노조 취소를 외친 결과였다. 대법원장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나는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소송 승소이 온전히 전교조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에 있었다고 믿는다.
이제 전교조는 새로운 모퉁이를 돌아 나가는 지점에 섰다. 바라건대 전교조를 중심으로 하는 빅텐트가 만들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신생 교원노조와 경쟁하는 구도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전교조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의 대문호 노신은 단편소설 <고향>을 다음과 같이 휘갑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들 문장을 대신할 새로운 문장을 상상해 보았다. 사람들은 전교조가 걸어왔고,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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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땅 위에는 영원히 존재하는 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적어지면 길도 사라진다.
0 노르웨이, 핀란드의 교원노조와 미국 미시시피 주, 메사추세츠 주의 교원노조들과 관련한 내용은 《21세기 교육의 7가지 쟁점》(2020,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제5장 ‘교원노조는 여전히 필요한가’(107~124쪽)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