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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의 평전과, 그의 주저 《대교수학》(2015, 나눔사)을 펼쳐 읽고 있다. 작년에 펴낸 《나의 교육 고전 읽기》(2019, 빨간소금) 증보 욕심에서 비롯한 책 읽기인데, 이렇게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나는 한숨을 쉬고 있다. 오늘날 우리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코메니우스의 삶과 사상을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느끼는 아쉬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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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겉치레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참된 지식의 그림자만 가지고 나갈 뿐이라는 불평의 소리가 많이 들려오고 있으며, 그러한 실상을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였다.” (《대교수학》, 203쪽)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 제18장 첫머리에서 만난 이 구절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이런 의문이었다. 학교에서 겉치레만 남는 불철저한 교육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학교 시스템 자체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일까, 교육자(교사)들의 무능력이나 무책임이나 직무 태만 같은 불충실한 자질 때문일까. 아니면 “참된 지식의 그림자만” 맛보게 하는 학교교육과정 자체의 문제일까.
코메니우스가 ‘철저함’을 기하는 학교교육(코메니우스는 이를 위해 기초, 기본, 지속성,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인 통합, 반복 연습과 기억 고정 학습 등을 강조했다.)을 고민하는 과정을 읽으면서, 나는 코로나 시대의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떠올렸다. 우리는 “철저한” 학교교육을 실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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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학교에서 과거와 다른 상상력을, 색깔이 다른 교육의 여지를 발휘할 틈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교육당국은 학교와 교사가 학생 ‘교육’보다 ‘관리’에 힘쓰기를 바라며, 수업 ‘내용’을 알차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보다 수업 ‘시간’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가령 교육당국은 어제 날짜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의 학사 운영 및 원격수업 질 제고 관련 교육부-시도교육감협의회 간담회 주요 협의 및 결정사항”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는데, 교사가 조‧종례를 실시간으로 실시하고, 원격수업 시 1차시당 수업 시간을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씩 운영하라고 지정했다.
조‧종례를 실시간으로 실시하고, 1차시당 수업 시간을 기존 규정과 원칙대로 하는 것이 원격수업의 질을 제고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육당국에게는 코로나 시대의 학교교육과 관련해 전 국민에게 전해지는 정치적인 메시지 관리 차원의 ‘기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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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실시간 조‧종례나 단위수업 시간 준수 지침은 그런 교육당국의 필요성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그것이 교육당국에게나 중요한 필요성이지 학교나 교사, 심지어 학생에게 중요한 필요성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학교와 교사(정확히 말하면 교장!)는 그 기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준이 내려졌으니 이제 학교와 교사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되며, 너끈히 그럴 수 있다. 지금까지 학교와 교사는 늘 그렇게 해 왔으니까. 늘 그렇게 해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