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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20. 2020

“나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브룬힐데 폼젤의《어느 독일인의 삶》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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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레 D. 한젠이 독일 제3제국(1933~1945)의 선전부 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이자 타자수였던 브룬힐테 폼젤의 삶을 살피면서 시종 제기한 의문은 ‘정치 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에 관한 것이었다. 한젠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감 능력과 연대감의 상실을 수반하는 평범한 시민 계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의 비상과 성공을 부른 한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그녀 자신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인식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브룬힐데 폼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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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젤은 쥐트빌데라는 베를린 중산층 동네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던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 사이에서 5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당시 독일 가정 특유의 엄격한 양육 분위기(아이가 잘못을 하면 부모가 자연스럽게 뺨을 때릴 수 있는 시대였다.) 속에서 ‘책임감 있는 장녀’가 되어야 한다는 훈계를 들으며 성장했다.


폼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평생 침묵을 지키며 살다가 100살이 넘어 자기 삶을 고백했다.(이 책에 담긴 브룬힐테 폼젤의 전기는 블랙박스 필름이 2013~2014년 뮌헨에서 촬영한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속 인터뷰 내용에 기초한다.) 폼젤의 삶을 이끌어 간 추동력은 직장과 물질적 안정, 출세(“상층부에 속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갈망이었다.


상관에 대한 의무감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련군이 진격해 베를린이 곧 함락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도주해 체포 위기를 피할 수 있었는데도 일터로 돌아가 타자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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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젤의 성실한 삶은 정치와 무관한, 개인적인 신념에 불과한 것일까. 이 책에서 폼젤은 당시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나 사태를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인상적으로 되풀이한다.


“원래 난 그런 일에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예요.”(56쪽)
“난 그런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57쪽)
“나는 그런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갔지만, 그래도 항상 그런 것들과는 거리를 뒀어요.”(183쪽)


폼젤은 결코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전부에 들어간 것은 상부 지시나 근무 지침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지와 무관했다고 했다. 나치 최고 지휘부에서 성실하게 일한 것은 단지 명령과 지시에 따라 자기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폼젤은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부당한 짓을 벌인 기억이 없다고 항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과오와 책임은 “완전히 잘못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호도한 나치 자신들, 나치 지도부”(216쪽)에 돌렸다. 폼젤은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었고 생각했다. 이때의 무관심은 한 개인이 특별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갖는 무관심이 아니라 “일반적인 무관심”(216쪽)이었다. 폼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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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폼젤의 고백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격변하는 독일 정치는 유복한 중산층들이 모여 산 고급 빌라촌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폼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폼젤은 단지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많은 월급을 받으며 풍족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가끔 맥주를 마시고, 교외로 소풍을 나가면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곳에서 하는 일들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 없었다. 폼젤의 논리에 따르면 그곳과 그곳에서 하는 일에 ‘거리’를 두거나 ‘무관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폼젤은 정치와 사회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무관심이라는 ‘삶의 철칙’에 따라 하루하루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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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젤의 삶은 특별하지 않다. 미국 언론인 밀턴 마이어는 1950년대 중반 독일에 거주하면서 나치에 가담한 ‘평범한’ 독일인 10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위기의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방관자와 동조자, 침묵을 지킨 다수가 자초한 비극을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2014, 갈라파고스)에서 담담하게 묘사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독일인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단지 특정한 조건 하에서 독일에 있었을 뿐이었다.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그가 이곳에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그가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나나 내 동포가 만약 그런 일련의 조건에 굴복하게 된다면 헌법도, 법률도, 경찰도, 심지어 군대조차도 우리를 어떠한 해악에서도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다. … 그러니 오래전에 나온 말은 지당하다. 즉 국가는 참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인간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그 국가도 어떠한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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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젤의 고백은 사실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자기 과거 행적을 대중을 향한 카메라 앞에 서서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폼젤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자. 다만 나는 폼젤이 자기가 ‘선택’한 삶에 대해 결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던 점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다. 가령 폼젤은 제국 방송국 취직 제안을 받은 뒤 나치 당원 가입 요청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예, 당장 가입할게요.”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생활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무수한 ‘생활인 폼젤들’이 그렇게 하는 사이(제3제국 당시 독일 인구 7000만 명 중 나치당원은 100만 명 정도였다.) 처음 18퍼센트를 얻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은 그다음 선거에서 30퍼센트를 얻었고, 마침내 10년만에 선거에서 승리해 독일 “민주주의의 문을 받아 버렸다.”(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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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서 킹(1929~1968)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폼젤은 2017년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2018), 《어느 독일인의 삶: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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