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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사가 자기의 교육적 권위나 권리를 두고 ‘교권’이라는 말을 쓴다. ‘교권=교사의 권위 또는 권리’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교사에게 교권이 있다면 학생에게 학습권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실제 학생이 학습할 권리로서의 ‘학습권’이니 ‘수업권’ 같은 말이 학교 현장에서 비교적 널리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교권 대 학습권(수업권)의 대립 구도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대립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하는 인식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교권이든 학습권이든 모두 교육활동의 범주 안에 있다. 이를 대립적이고 모순적인 관계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면 교사와 학생이 소모적인 제로섬 게임에 있는 주체들처럼 전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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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교권은 교사의 권위나 권리로서보다 ‘교육권’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교권이라는 용어가 교육적 권위나 권리의 능동적인 주체로서의 교사가 중심에 놓이는 개념으로 쓰이게 된 것은, ‘학생인권’이 학교 현장에서 최대의 이슈이자 화두가 됨에 따라 일부 교사들이 이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교권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가령 우리는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에게만 인권이 있나? 교사도 힘들다. 교권이 있어야 한다!’ 같은 말을 종종 듣는다. 교권 대 학습권의 대립 구도라는 부적절한 제로섬 기제에 교권 대 인권이라는 비논리적이고 정체 불명의 대립 구도가 덧붙여지면서 학교와 교실이 교사와 학생의 격전장처럼 돼버린 것이다.
답답하고 난감하다. 인권이라면 그냥 인권인 것이지 학생 인권 따로, 교사 인권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권이 교육권이라고 할 때, 그것은 교사에게뿐 아니라 학생에게도 중차대하게 적용돼야 하는 개념이다. 애초 교권이라는 말 대신 그것의 본래적인 의미에 걸맞게 교육권 같은 말을 썼다면 상황이 조금 다르게 펼쳐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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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교권 보호’나 ‘교권 침해’보다는 ‘교육활동 보호’나 ‘교육활동 침해’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와 관련하여 2016년 구(舊) <교원의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이, 교육활동 중 피해를 입은 교원에 대한 치유와 지원책을 마련하고 침해학생에 대한 특별교육이나 심리치료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으로 바뀌면서 그 제명을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공식 약칭이 <교원지위법>이다. 이하 이 명칭으로 통일해 쓴다.)으로 한 것은 지극히 옳은 방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교권 보호니 교권 침해니 하는 말이 학교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관성적인 언어 사용 탓이 없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교사들이 교육활동 침해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위기감이 자기 자신을 강하게 보호하고 싶은 바람으로 이어진 결과가 교권이라는 말을 계속 쓰게 만드는 더 큰 요인처럼 보인다.
교육활동 보호 시스템을 규정하고 있는 <교원지위법> 안에서 여전히 교권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지 모르겠다. 지역, 학교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에 관한 제반 사항을 심의하는 공식 기구체인 ‘시도교권보호위원회’(제19조 제1항)와 ‘학교교권보호위원회’(제19조 제3항)가 대표적인 보기다.
학교 안에서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해 절차에 따라 처리할 때 ‘교권보호위원회’가 가장 널리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교원지위법>상의 공식 기구인 ‘시도교권보호위원회’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시도교육활동보호위원회’와 ‘학교육활동보호위원회’ 정도로 개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