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석 연휴 이틀간 돌담을 쌓으며 보냈다. 1미터 50센티미터 남짓 높이에 길이가 4미터쯤 될 것이다. 온 식구가 힘을 모았다. 장인님이 흙 반 돌 반 섞인 마당밭에서 돌을 골라냈고, 아내와 아이들이 그것들을 작업장으로 날랐다. 장모님은 중간에 새참을 챙겼다.
몇천 개 족히 넘을 돌들이 이사를 해 새로 자리를 잡았다. 나름 ‘대공사’였다. 나는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돌을 들 때마다 팔뚝 근육이 팽팽히 긴장하면서 통증을 주었다. 보통 어른 머리통만한 돌들을 들어 쥐고 옮긴 때마다 두 손의 손가락 열 개가 부르르 떨면서 경련기가 일었다. 하지만 한 단 한 단 돌이 쌓이면서 모양을 드러내는 아담한 돌담이 모든 힘든 순간을 이겨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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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들은 맨바닥에 깔려 있었다. 옛날 외양간과 헛간으로 쓰던 별채를 철거한 자리였다. 30년 전 새로 집을 짓고 헛간을 세우면서 마당 앞에 서 있던 돌담을 허물었는데, 돌담 귀퉁이를 채우고 있던 그 돌들을 모두 바닥 기초에 썼다.
돌들은 햇살 아래 돌담으로 당당히 서 있다가 헛간 콘크리트 바닥 기초 돌로 어두운 세월을 보냈다. 그 끝에 다시 햇살을 보았다. 메마른 돌들은 닳거나 늙지 않았다. 예전 모습 그대로 다시 햇살을 보게 된 것은 돌이기 때문에 갖는 굳건한 운명 덕분이리라. 나는 영락하는 그네들의 운명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3
옛날엔 돌도(!) 귀해서 대부분 홑담을 쌓았다. 동네 아이들이 담넘이 장난을 하다가 발을 조금만 잘못 디뎌도 담이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장마철 비가 억수로 내린 뒤 땅이 물러지면서 논두렁을 받치던 돌담들이 주저앉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도와 돌 쌓는 일을 자주 함께했다.
돌담을 쌓다가, 무너진 담을 아버지와 함께 새로 쌓아 올리면서 만난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모양이 내 감각 기억 속에 새겨져 있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어린 시절 돌담을 쌓는 일이 내게 각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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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겹담을 쌓았다. 어지간히 힘을 주어 밀거나 사잇돌을 빼내지 않으면 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무너져도 제 손으로 다시 쌓으면 된다. 무너지면 스스로 좌절하며 사라지는 사람이 있지만, 돌들은 무너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