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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9. 2020

돌마다 놓이는 자리가 있다

고향 집 돌담을 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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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초에 이어 돌담을 또 쌓았다. 이번 주말에는 동네 고샅길에 면한 쪽이었다. 기초로 놓인 바닥돌 있는 데서부터 중간께까지 이미 놓인 돌담 위에, 콘크리트 블록을 제거한 자리를 돌들로 차곡차곡 채워 올렸다. 실제 쌓은 높이가 1미터 정도 되지만 원래 있던 아래쪽 돌들까지 합해 셈하니 2미터가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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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들은 모양이 다 다르다. 큰 돌과 작은 돌, 아주 큰 돌과 아주 작은 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돌, 둥근 돌과 모난 돌, 납작한 돌과 오동통한 돌, 세모 돌과 네모 돌, 둥근 공 같은 돌과 타원 같은 돌, 모가 둥근 돌과 뾰족한 돌과 모가 하나인 돌과 여러 개인 돌, 맨숭이로 매끄러운 돌과 가시 같은 돌비늘들이 다닥다닥 붙은 돌, 밝은 돌과 어두운 돌, 색이 하나인 돌과 여러 개인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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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기 가장 문문한 돌은 납작하고 모가 둥글며 겉이 맨숭이로 매끄러운 돌이다. 납작해서 대개 한 손으로 들기 딱 좋고, 제자리에 놓이면 단정한 모습이 보기 그만이다. 이 중에서도 겹담용으로는 큰 돌이, 홑담용으로는 중간 돌이 제격이다. 흠이 있다면 높이를 무럭무럭 채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돌담 쌓을 때 골치를 썩이는 돌들은 두 가지가 있는데, 나는 이들 중 어느 돌에 ‘가장’이라는 부사어를 선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모 돌과 둥근 돌이 그 주인공이다.


세모 돌들은 안성맞춤 자리가 별로 없다. 세모 돌의 변 어디에나 여느 돌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 같지만 의외로 서로 단단히 맞물리는 힘이 약해 환영받지 못한다. 세모 돌이 많으면 돌담이 무너지기 쉽다. 둥근 돌은 세모 돌보다 제자리를 찾기 다. 모가 없어 다른 돌과 맞물리지 못할뿐더러 간신히 자리를 잡고 나서도 다른 돌을 튕겨낸다.


그러나 세모 돌도 비슷한 세모 돌끼리 연이어 잘 맞춰 쌓으면 돌담 모양이 제법 살려낸다. 둥근 돌도, 모가 요란한 돌들 사이에 우연히 들어가 있으면 언뜻 보기에 기분을 좋게 한다. 돌담 꼭대기를 둥근 돌로 휘갑하는 것도 돌담 쌓기의 화룡정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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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들겠지만 돌마다 놓이는 자리가 있다. 그것은 돌담 쌓는 사람의 매서운 눈썰미나 손 감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돌담용 돌들의 놀라운 매력 덕분에 가능하다.


나는 돌무더기에서 거의 아무 돌이나 집어든다. 그러면 그 놈은 거의 예외 없이 수 초를 지나기 전에 자기가 놓일 자리를 향해 내 손끝과 발길을 이끈다. 그리고 그렇게 놓인 자리는, 아주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두 가지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첫째, 돌이 쓰일 자리가 아주 많다. 나는 돌담 쌓기 한바탕을 최소한 1미터 정도 길이로 펼쳐 놓고 진행한다. 그 정도 길이면 모양이 어지간히 크거나 모가 나지 않는 한 돌마다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간다.


둘째, 어떤 돌에게 모자라는 구석을 다른 돌이 금방 재깍 채워 준다. 모난 돌이 사방을 둘러싸면 둥근 돌도 예술적인 조형 공간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돌담을 쌓을 때는 작은 돌을 함부로 내버려서는 안 된다. 큰 돌 사이사이 빈틈을 적실하게 들어가 채우는 작은 돌들이 돌담의 아름다운 최후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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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돌들을 보면 아름다운 어떤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사람 세상이라는 이름의 돌담을 쌓는 조물주가 있다면, 그는 분명 모든 사람에게 자기 모양에 맞는 자리를 옳고 분명하게 정해 주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누가 누구를 위하거나 위계와 차등과 층하가 있는 세상이 아니라 각자 자기 모양대로 똑같이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이지 않을까. 그런 돌담 같은 사람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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