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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공부 잘하는 학생, 잘 가르치는 교사, 교육에 적절한 시설이 갖춰졌다고 좋은 학교라고 말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잘’의 의미를 성적과 상급학교 진학 결과에 맞춰 규정하는 우리 현실에 비춰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남과 다른 특별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좋은 학교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들이 우리나라 학교 교장실 학교 안내판마다 서로 엇비슷해 보이는 ‘학교특색사업’이 붕어빵처럼 박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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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합(전교조) 공부 모임인 ‘아카데메이아’ 일정을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 ‘50년이나 100년 뒤 우리 학교의 모습은?’이라는 주제로 각자 에세이를 한 편씩 써 돌려 보자고 정식으로 제안하려다 그만두고 말았다. 내 딴에는 각자 일하는 학교의 문화, 의사결정 구조, 학교 미시정치, 의사소통과 관계의 동학 등이 다양할 것임을 전제로 학교의 미래 모습을 상상적으로 추체험하는 글쓰기를 해 보자는 취지였다. 우리는 교육과 환경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육을 멀고 길게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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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육정책 결정 구조 안팎의 풍토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를 하던 중 떠오른 생각이었다. 주변을 보라. 백년지대계는커녕 오년지대계에도 못 미치게 근시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나는 몇 년 전 새로 들어선 문재인정부가 우리 대입제도의 건강한 미래를 고민하자며 전국의 시민들을 한데 모아 숙의민주주의에 입각해 몇 달간 전국을 돌며 토론한 끝에 내놓은 결과의 핵심이 ‘정시 몇 퍼센트 확대’였던 일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참가자 모두가 펼친 지성의 향연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교육의 먼 미래까지를 고민한 결과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당국 한쪽에서는 야심차게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하거나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한 입법 활동을 서두르면서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자는 우리 교육의 장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수능 체제의 공정성 신화에 기대 학교교육 시스템이 단기적인 성과주의에 종속되도록 기계적 정량화를 강조한다. 10년 동안 키워 온 1000개가 넘는 다양한 색깔의 혁신학교 시스템도 묻지마 식 “혁신학교, 기초학력 교육 소홀” 같은 기사 한방에 휘청거리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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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다. 50년이나 100년 뒤 학교의 모습을 앞당겨 상상해 보는 일은 물색없는 정신 유희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그날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자.’ 집에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냥 마음이 쓸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