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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학급은 67명이었다. 1980년대 후반이었다. 이과 계열 학급에는 70명이 넘는 학급이 있었다. 교실은 1930년대~1950년대 초반 사이에 지어져 지금보다 좁았다. 70명 안팎의 장정 같은 10대 후반 남자 청소년들이 토론을 하거나,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활동적인 교육을 펼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학생과 교사 관계는 따로국밥 같았다. 공부를 잘하거나, 사고를 쳐서 얼굴이 알려진 소수의 학생들 외에 선생님과 개별적으로 대화하거나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나는 당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유달리 매정하거나 비인간적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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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입문 첫 해에 인구 30만이 되지 않는 지방 소도시의 여자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정원이 45명이었다. 3월 초부터 야심차게 생활지도와 대학 진학을 위한 개별 맞춤형 상담을 시작했다. 야자 시간을 이용해 개인별 상담을 하고, 상담 중 주고받은 이야기 중에 추가로 확인하거나 검토해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는 등의 후속 작업을 4월 말까지 거의 매일 진행했다.
밤늦게 퇴근하면 온몸이 녹초가 되어 제대로 씻지도 않고 곯아 떨어졌다. 학생의 가정 환경이나 생활 여건, 학업 태도나 능력을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라 여겼기에 이를 앙다물고 버텼다. 한편으로 ‘우리 반 학생 수가 지금의 절반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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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학급당 학생 수가 70명에 이르는 학교는 없을 것이다. 우리 지역에 있는 중고등학교는 학급 학생 수가 30명 안팎 수준이다. 20년 남짓 되는 기간에 30퍼센트 정도 줄어든 수치다. 정부가 학생 수 감축을 위한 정책을 주도면밀하게 수립해 시행한 결과는 아니다. 시간 흐름에 따라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학령 인구 역시 함께 줄어든 데 따른 부수적인 현상에 가깝다.
달리 말해 지역이나 학교급에 따른 과밀 교실 문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2020년 통계를 보면 31명이 넘는 학급 수가 전체 학교급을 통틀어 10,391개다. 대도시 신도심에는 40명 가까운 학급이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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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교육이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교육의 나침반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 교육은 얼마나 달라졌고, 앞으로 얼마나 더 바뀔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수업 혁신이니 미래 학교니 하는 말들을 그럴듯한 수사로만 받아들이는 냉소적인 시민들이나 교육자들이 적지 않다. 학교의 색깔과 분위기를 바꿔 학부모들이 학교를 더 신뢰하게 만들고 싶은가.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기를 바라는가.
학급당 학생 수를 ‘국제 수준’에 맞춰 줄여 보라. 교사는 학생에게 더 자주 눈길을 주고, 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수업은 마침내 학생의 것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30명이나 그 이상의 학생과 함께하는 수업은 교사의 열정, 의지, 능력과 무관하게 학생보다 교사 편에 가깝다.
학생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동료 학생들과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또래집단의 기대와 압력이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학급당 학생 수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 아래 링크 주소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에 관한 청원" 주소입니다. 동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국민동의청원 | 공개 전 청원 |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에 관한 청원 (assembl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