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무엇인가
정부 여당의 고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결정을 보며
1
나는 1988년에 대학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겪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같은 학과 선배였던 박래전 형이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하여 사망한 일이었다.
래전 형은 내가 기숙사에서 함께 지낸, 영문학과 출신 방장 형과 친했다. 가끔 묵은 빨래감을 가지고 방에 왔다가 라면을 끓여 먹고 가곤 했다. 형은 말수가 적었고, 수줍어 보이는 미소를 자주 지었다.
평범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촌놈에게 래전 형의 죽음은 깊은 절망과 분노를 가져왔다. 래전 형은 시인을 꿈꾸던, 가난한 농가의 셋째 아들이었다. 무명의 국문학도를 극한의 저항 수단인 분신으로 이끈 것은 1980년 5월 광주였다. 1988년 6월 4일 아침, 래전 형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을 하며 이렇게 외쳤다.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
2
학교에서는 노상 시위를 했다. 학교 도서관 앞 민주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교문으로 진출해 그곳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마다 교문 앞과 교문으로 이어지는 교차로 주변에는 어김없이 수대의 전경버스가 달려와 진을 쳤다.
우리는 교문에 모여 주먹질을 하거나, 가두시위를 하려고 교문을 빠져 나오면서 화염병이나 돌을 던졌다. 경찰은 최루탄으로 응수했다. 매운 최루탄 분말과 연기가 아침 안개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눈과 입과 코로 들어갔다.
콧물과 함께 쏟아지는 눈물이 최루 가스 때문인지 분노와 슬픔 때문인지 모를 때쯤 청바지와 청자켓을 갖춰 입은 사복 진압 경찰 ‘백골단’이 전면에 나섰다. 여학생들은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렸고, 남학생들은 혼비백산하듯 도망쳤다. 백골단의 방망이질은 무지막지했다.
3
한 시대를 대표하는 어떤 분위기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한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해석하고 수용하는 수준 역시 같지 않다.
다만 나는 대학에 입학한 1988년부터 군 생활을 마친 1992년까지의 군인 대통령 시대를 무겁고 무섭고 희망을 찾기 힘들게 만든 분위기와 함께 기억한다. 1980년 광주를 특별한 감수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사람이라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4
그 2명의 군인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는 한몸이었다. 국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고, 차례로 대통령 직에 올랐다. 이를 방해하는 세력과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협박하고, 회유했다. 목숨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스스로 버려 저항하자는 이들이 속출했고, 무자비한 고문 앞에서 양심과 정의를 배신했다. 그 모든 일들을 처음 야기하고 이끌어 간 것이 그 두 사람이었다. 그런 시대였다.
지금,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군인이자, 내란범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을 받은 전직 대통령 노태우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또 다른 내란범인 전두환과 다른 사람이라고 강변한다. 공과 과의 상대적인 비중을 계산하여 공을 더 높이 평가한 결과 국가장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국가’가 무엇인가.